2009년 6월 25일 목요일

폐문

중국에서 구글블로그를 차단했습니다.

제법 됐습니다.

돌아돌아 한참만에 들어왔습니다.

블로그를 닫고, 다시 기존의 웹사이트

www.forgogh.net 로 돌아갑니다.

2009년 5월 14일 목요일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고재종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낱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말이 너무 많아서 쓰러질 듯이 지쳤을 때 시 읽는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읽으니, 전에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아마 그 때는 보았는데 지금은 안 보이는 것도 있을 터이다. 생각 없이 꺼낸 시집 안에는 내가 한국을 떠나오던 무렵에 고은이가 썼던 편지가 끼워져 있다. 전에도 몇 번 보았던 것 같은데, 어쩐지 이 시집 사이가 그 편지의 자리인 듯해서 옮겨두지 않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여전히 가장 위태롭고 단단한 사람쯤 되는 고은이는 아마 그 녀석의 속내를 닮게 될 딸아이와 함께 영국에 산다. 편지 속에서,

"당신도, 나도, 건승합시다. 최소한, 비겁하게, 가고 싶은 길에서 가야할 길에서 도망치지는 않도록 합시다. 재회 때까지 건강하세요."라고 쓰고 있다.

이번 작업이 끝나면, 어디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두 바퀴 자전거를 타고.

2009년 5월 13일 수요일

작업은 새벽 다섯 시에 끝났다. 끝난 것도 아니고, 도저히 더 할 수 없어서 그냥 컴퓨터 껐다. 5월에, 새벽 다섯 시도 되기 전에 낡이 밝기 시작한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죽은 듯 몇 시간을 자고, 마감 닥친 자전거 여행기 원고를 위해 시내 산책을 다녀 왔다. 이번에는 제법 며칠짜리 하이킹을 생각했었는데,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못 다 끝낸 잡지 편집을 도와주고, 밀린 사진 작업들을 해서 보내고, 일정 잡힌 촬영 몇 개를 끝내려면 우선 다음 주 수요일까지는 틈이 없겠다.

이번 일들이 끝나면, 정말로 내 원고 퇴고를 서둘러야겠다고, 새 다짐을 한다.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열 개쯤은 족히 된다. 제발, 그 때까지는 버텨주기를. 곧, 해 낸다.

2009년 5월 9일 토요일

아침에 복단대에 갔다. 잡지 준비하는 친구들 인터뷰가 있었다. 며칠 바빠서 인터뷰 질문도 제대로 정리를 못 한 터라, 붐비는 아침 시간도 피하고 질문지도 정리할 생각으로 일찍 나섰다. 도착해 보니 약속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정문 안쪽에 큰 모택동 동상이 만드는 그늘에 앉아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며 쉬었다. 조금쯤 졸고 싶기도 했는데 아침 맑은 바람이 자꾸 잠을 깨웠다. 눈감고 있어도 잠들지 못 했다.

모택동 동상이 만드는 그늘은 컸다. 나 말고도 두어 명이 충분한 제 공간을 확보하고 앉아서 신문도 보고 귀도 후비고 사람도 기다렸다. 오늘의 중국이, 모택동의 그늘에서 쉬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2009년 5월 5일 화요일

유학생에 대한 책임. 내가 대학생활을 통해 많이 성장했으니, 그런 기회가 상대적으로 드문 이 곳 유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어떤 막연한 책임감 같은 것. 건너 건너 알게된 유학생들이 잡지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 중에 깨어있다고 스스로 아는 몇몇이 모여서 자신들이 속한 유학생 사회에 어떤 자극을 주고 싶다고 뜻을 모았다. 좋은 뜻으로 뭉쳤으니 잘 하라고 그저 마음만 보태며 있었는데,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처음으로 걱정이 됐다. 든든하게만 보이던 친구였는데, 지친 모습이 안타까웠고 저러다가 제풀에 쓰러지면 그 좋은 시도가 빛을 보지 못 하고 무너지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그런 시도를 했던 팀에게도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그것보다 큰 것은 그 시도를 통해 어쩌면 자극을 받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알게 될 더 많은 유학생들이 안타까울 것이다. 강건너 불구경이나 하고 뒷방 늙은이처럼 괜히 잔소리나 보태려던 마음을 바꿔서 조금 나서서 돕기로 했다.

발간 일정을 앞둔 잡지라고 하기에는 준비라고 해 둔 것이 없었다. 우선 급한대로 다시 회의를 통해 구성을 잡고 아는 잡지사로 가서 편집에 필요한 디자인툴을 얻어왔다.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으니 툴에 대한 안내 서적도 거의 빼앗듯이 가져왔다. 잡지의 핵심이 되는 디자인 서식도 얻어 왔다. 선듯 내어준 마음이 고맙다. 팔자에 없는 편집 디자인을 공부하게 생겼다. 모자란 기사를 몇 개 써주기로 하고 기존 원고에 대한 교정 이상의 수정 작업을 해주기로 했다.

학생들이 하는 작업에 끼어드는 것이 못내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다. 그 때는 나도 그랬을까? 하는 것마다 서툴러 보이고 온갖 틈만 보인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나도 만들어졌을 테니까 그들의 지금도 긍정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러기엔 그들이 잡아둔 일정은 촉박하고 해 놓은 것은 성글다. 급한 마음으로 몰아치고 안 되는 부분은 내가 떠안기로 한다.

마음이 불편하다. 내 부족함을 내가 잘 아는데 그 부족한 모습으로 저 당당한 아이들을 몰아치고 있으니 무엇인가 속이는 기분이고, 회의 끝내고 아이들 돌려보내고 나면 방 안에는 쇳소리만 여운처럼 남고 녹슬어가는 쇳조각 비린내만 난다. 급한 마음에 말이 너무 많아서 미처 생각으로 채우지 못 한 성근 말들이 난무한다. 쫓기는 마음은 저들의 상황을 깊이 헤아리지 못 하고 내 기준에 맞추어서 닥달만 한다. 내가 관여하기 훨씬 전부터 저들끼리 공들여 만든 결과물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자꾸만 그들 기를 죽이는 것 같아서 내 말에도 자신이 없다. 그들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잡지에 대한 자부심 대신, 부족한 것들만 모여서 어설픈 미완성 밖에 얻어낸 것이 없다는 감상을 갖게 할까 무섭다.

친구들, 선생님 생각이 간절하다. 내 부족함을 바닥까지 깨부수며 범접하기 어려운 높이의 지식으로 강의해주시던 교수님들이 간절하다. 선생님들의 지식에 대한 의심 없이 참 편하게 많은 것을 배웠다. 의심 따위 우습다는 듯, 이미 수 많은 의심에 대한 승전 기록을 보여주시듯 선생님들의 배움은 깊고 단단했다. 그 말본새 하나하나, 그 몸가짐 하나하나는 또 얼마나 멋드러졌던가.
몇 명만 뭉쳐두면 이 정도 잡지쯤은 놀이처럼 해치우고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러 갈 수 있는 친구들이 간절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못 해낼 것이 없어 보였다. 서로가 서로의 능력에 대해 신뢰했고, 자신들의 자리에서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들고 나타나는 그들의 등장은 참 든든했었다. 함께 모일 때 산술적 합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했고, 그들은 한 번도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며칠의 취재와 며칠의 디자인 기간이 끝나면, 어쨌든 잡지라는 형태가 나올 것이다. 이번 작업이 끝나면 나는 팽.당해야 한다. 내가 팀에 있는 게 이 친구들에게 별로 이로운 일이 아닐 듯하다. 대학생으로 팀을 꾸려 그들의 내부적 성장과 외부에 대한 자극을 의도한 것이니까, 그렇게 가게 해야겠다. 그러니까 이번 한 번에 나는 되도록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겠다. 다음 번 작업에는 그들이 더 나은 곳에 닿을 수 있도록 하고, 무엇보다 겨우 나 정도의 수준에 만족하지 말기를 당부해야겠다. 든든하고 아름다웠던, 일당백 친구들의 전설을 전해주어야겠다. 깊은 바다같았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작업을 진행할 수록 내 부족함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번 일 끝나면 입 좀 닫아야겠다. 말 좀 줄이고, 부족한 내 공부나 좀 더 채워야겠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에프상하이 사진스터디도 슬슬 끝이 보이니까, 사이트 활동도 좀 줄이고 새로 책공부하는 작은 모임이나 꾸려 보아야겠다. 사회인의 신분으로 학생들 작업에 끼어드는 것이 어색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은 한 번도 학생이 아닌 적이 없었다. 선생님 따라가다가 혼자 길 잃고 우는 학생이다.

2009년 4월 27일 월요일

베이스가 좋아진다. 요요마의 첼로 정도에서 느끼던 호감은 게리 카의 베이스 연주쯤으로 더 내려갔다. 저음은 고음보다 층간 소음이 잘 전해진다. 아파트에서 듣기에는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밤에 듣는 베이스 음악은 심장에 바로 닿아서 심장박동이 음에 반응한다. 아랫집 윗집에 조금 미안하지만.

악기 하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건 맘처럼 쉬운 게 아니다.

때가 되어서 악기를 배우게 될 때, 콘트라베이스나 안 되면 더블 베이스라도 배워야겠다. 더블 베이스보다 좀 더 큰게 콘트라베이스인가? 단지 그 차인가? 더 크면 음이 더 낮은가? 뭐 어쨌든, 악기는 정한 셈이다. 활로 켜는 것보다는 손가락으로 튕기는 게 더 나을 듯. 도구를 하나라도 덜 쓰니 다루기에 더 쉽지 않을까?

가족 재즈밴드라도 만들어야지. 근데, 온 가족이 다 베이스를 좋아하면 어쩌지?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샤워하다가 불쑥 드는 생각.

사람들은 왜 '그리스인 조르바'에 열광했던 것일까? 아마 이윤기의 번역이었던 듯한데, 번역가 스스로도 자신의 번역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했고, 읽는 입장에서도 말의 맛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었던 듯한데, 번역의 문제를 떠나서, 왜 사람들은 한 명의 그리스인을 그토록 사랑했었을까?

되는대로 막 산 것 같은 인상에,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그렇게 나이 든 인물. 아마 그 대충 산 것 같은 삶을 관통하는, 사실은 단단한 어떤 삶의 고집 같은 걸 사랑한 것일까? 성인들이 보여주는 삶이 위대하기는 하나 일반인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이라면, 조르바의 삶은 나와 동시대를 호흡하고 바로 옆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도달한 어떤 경지였기 때문 아닐까? 뭐 어쩌면 쉽게 닿을 수 있겠다는 친근감이었을까? 작은 일에 감동하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고, 어떤 계산도 없이 좋아하는 대상을 마음껏 사랑하고, 자신의 가치와 본질을 스스로 잘 알고, 삶 앞에 한 치 주저함도 없이 당당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성인들의 삶이 모든 유혹을 끊어내고 스스로를 가두는 과정을 통해 완성에 도달한다면, 조르바는 삶 속의 모든 유혹과 화해하면서 마침내 이루어낸 경지에 닿았기 때문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조르바의 죽음은, 성인의 죽음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침대에서 일어나 힘찬 발걸음으로 창문가로 가서 호탕하게 웃고는 그 자세로 죽었다지 않나. 그 웃음은 마치 '다 이루었노라' 내지는 '한 세상 잘 살았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사실 이 아침 가장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샤워기 밑에 서서 왜 갑자기 조르바가 생각난 것일까?

2009년 4월 23일 목요일

유난히 시계視界가 좋은 날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저녁이 그렇다. 창 밖은 마침 어두워지는 중이었는데, 아주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작은 베란다를 실내로 끌어들여 놓은 내 방의 창문은 서쪽을 향해 둥글게 나있는데, 서쪽으로는 아파트 단지와 그 너머 낮은 건물들의 꼭대기가 이어져서 지상과 하늘의 경계를 만든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멀리 중산공원에 있는 롱즈멍 호텔의 야간조명이 보인다. 이렇게 시계가 좋은 날은 한 달에 잘 해야 한 번 정도 밖에 없다. 이런 날은 건물의 외관을 찍기에 좋은 날이다. 뿌연 날씨에 찍고 이 만하면 됐다고 자위하며 돌아선 건물들이 미련처럼 남아서 떠오른다. 마침 대기는 건조하고 하늘은 흐리고 낮아서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되었다. 이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면, 그래서 저 하늘 너머에서 곧 태풍이라도 올 것 같은 날씨였다면 내 마음은 미리 날았겠다.

퇴고를 시작한 원고는 진도가 잘 안 나간다. 문장을 마련하지 못 한 기억을 내용만으로 엮으려니까 그렇다. 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문장은 빠질 것이 없지만 내 기억력은 선택과 생략에 능하다. 그래서 닥친 상황에 대한 문장은 참 좋은 것을 알겠는데, 지나간 일에 대해 기억해 쓰려고 하면 문장은 맛도 안 나고 꼭 필요한 요점 외에 주변 상황들의 많은 부분을 생략해 버려서 쓰고 돌아본 문장은 문장이라고 부르기 부끄럽다. 내 다음 책은 아마 길에서 쓰게 될 것이다. 기억이 지나간 일들을 선택하고 선택받지 못한 이야기들을 지워버리기 전에, 싱싱한 비린내 나는 문장들을 묶어 내는 책이 될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월드비전에 후원신청을 한 것이 한 달 가까웠는데, 오늘에야 이메일을 통해 내가 후원할 아이에 관한 내용을 받았다. 아마 신청할 때 쓴 한국 주소로 우편물로 발송되었던 모양이다. 이메일을 통해 정보를 받겠다는 문의 메일을 보내니 이제야 보내준다. 내가 도울 아이는 말리.에 사는 토고.라는 이름을 가진 일곱 살 남자 아이다. 말리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 피부색이 검고, 눈이 크다. 사진 좀 잘 찍지 그랬나. 흙벽 앞에 세우고서, "자, 사진 찍자. 예쁘게 찍어야 사람들이 널 도와줄 거야. 말 잘 들어야지."하며 카메라가 폭력을 휘두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이는 겁에 질려서, 팔려나가는 짐승의 눈빛으로, 자신이 받는 도움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사진 속에 있다. 때묻은 푸른색 티셔츠를 입었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쓰여 있고, 남자 형제 네 명에 보통의 건강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보다 윗줄에 아동 번호.라는 제목으로 이 아이는 몇 개의 숫자로 그 존재를 대신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얼마의 돈이 네 삶을 구하지는 못 할 듯한데. 내가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고 해야 네가 그 뜻을 받아들이기도 아직 어린데. 힘 앞에 주눅 든 네 표정 앞에 나는 주눅 든다. 어쨌든, 한 아이의 눈빛 덕분에 나는 열심히 제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서로 돕고 살자. 나도 힘이 들 때는, 버텨야 할 이유를 생각하마. 부족한 내가 기꺼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마. 나라도 세상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는 의지가 되니 그래도 사는 것이 낫다고 믿으마.

유난히 정신이 맑은 밤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밤이 그렇다. 어제 늦게 잠든 덕분에 아침에는 늦잠을 잤고, 덕분에 요 며칠 새벽마다 하던 원고 퇴고를 오늘은 못 했다. 한 번 엉킨 일과는 계속 이어졌는데, 마침 별다른 일정도 할 일도 없었던 하루는 무료하게 갔다. 인터넷으로 영화도 보고 한국 쇼도 보면서 밝은 날을 보냈다. 며칠 분주하고 단단하게 살았던 뿌듯함으로 오늘 하루의 나태함 정도는 덮어도 좋은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이렇게 정신이 맑으니까, 오늘은 편지라도 써야 하나. 어제 혜림이가 보내준 히긴즈 트리오라는 재즈밴드의 음악을 씨디로 구워놓고 아직 듣지 않았는데, 아랫집 윗집에게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다 늦은 밤에라도 들어 보아야겠다. 부탁받은 승우 형 렌즈도 얼른 팔아줘야겠고, 허락의 전화를 해 준 승민씨 강의도 짜 보아야겠다.

조금 더 경쾌하게, 리듬을 타며 걷자. 다시 못 올 봄이지 않나.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1-2






시간은 빨리 흘렀다. 1년 반을 예상하고 온 길이었다. 1년의 교환학생 과정을 보내야 했고, 그 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중국어 실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 학기 먼저 와서 따로 어학연수 과정을 듣기로 했다. 시간의 끝이 정해지면 남은 시간의 크기가 작아 보인다. 이 넓은 땅을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배워가기에 일 년 육 개월의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어학반의 수업은 오전과 오후 수업이 하루씩 번갈아 있어서 하루 중의 반나절은 마땅히 할 것이 없었고 학교 바깥은 끝 간 데를 모를 신천지였다. 카메라 한 대와 지도 한 장, 나침반 하나를 챙겨서 틈 날 때마다 도시를 채집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도시는 거대했다. 지도 속에는 도시를 관통하는 강과 길이 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지도 속의 점들을 잇고 있다. 그 연결은 가늘어서 아슬아슬해 보였다. 2차원의 평면 속에 면적과 위치만으로 존재하는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직접 가 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학교가 있던 곳은 새롭게 도심권이 형성되는 쉬자후이 지역이었고, 그 곳에서 화하이루를 따라 버스를 타면 온갖 백화점들이 늘어선 길을 지나 상하이의 몇 안 되는 전근대 건축물 예원의 서쪽 끝에서 버스는 멈춘다. 골동품 시장과 귀뚜라미 시장을 지나고 남방 정원의 흔적을 본 후에는 더 동쪽으로 걸어서 황포강의 야경이 유명한 와이탄에 닿거나 북쪽으로 걸어서 상하이의 가장 번화한 거리 난징루로 갈 수도 있다.



이틀 썼는데, 몇 줄 안 되네. 이렇게라도 해야 얼른 수정이라도 할 듯.
시내 나갈 일이 생겨서, 볼 일들 체크하니 시간이 조금 남네? 날씨도 조금 좋네? 아하, 오랜만에 산악용품점에 가서 속옷이랑 양말 좀 살 궁리를 하니 지름신께서 또 살살 오시려는 듯.

갑자기 씨디피 살 궁리. 엠프 산 것이 1년이 가까운데, 씨디피는 아직도 승우 형이 빌려주신 디제이용 씨디피. 뭐 맘에 드는 걸로 사자면 가격은 비싸고 지갑은 비었고, 무엇보다 음질 차이도 가격만큼 안 날 것이 뻔하니까, 그냥 중고 매장에 가서 저렴하게 구하면 500원도 안 할 텐데, 난 왜 1년이나 가깝게 그걸 안 샀던 걸까?

이렇게 좋은 날씨가 며칠 더 이어진다면, 어느 날 불쑥 씨디피를 지를 것 같은 반군. 이왕이면 리모콘 달린 걸루다가.

소소한 지름이 주는 삶의 의욕이라니. 으하.
속 깊은 친구 몇 명을 가깝게 두고 있다는 것이 참 복 된 일인 것을 알겠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변한 것 중에 한 가지는 친구의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이다. 형, 누나, 동생, 선배, 후배 등으로 나누어 갈래 지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냥 친구였다고 이제 안다. 한국어의 존칭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관계를 서열화하는 단점도 있다. 몇 살 터울 정도는 그냥 친구로 좋다. 사실 나이라는 것을 따져묻는 것도 서열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에게서 특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좋은 사람들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나이를 잊고 싶은데, 대충 그렇게 사는 것도 같은데, 나 혼자 잊는다고 잊어지는 게 아니다.

때로 멘토가 되고, 때로 쉴 곳이 되고, 또 언제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는 축복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잡 다단한 문제들도 나를 아는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해 보인다. 내 밖에서 나를 나로서 보아주는 그들이 있어서 가끔 벽에 부딪칠 때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훌륭한 답을 들고 웃으면서 내게 온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나로서 오롯하게 있을 수 있는 응원이고 나다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이다.

어머니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답답해 하신다. 그 때쯤의 여인이 한 번쯤 겪는다는 주부우울증인가 싶다가도, 그 증상을 보면 안타깝기는 어쩔 수 없다. 어머니께 내 좋은 친구들같은 친구들이 단 몇 명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아버지는 젊어서 이루신 것들에 기대어 지금도 세상을 호령하며 지내신다. 이제 좀 더 낮고 부드러워지셔도 좋을 듯한데 당신 자신은 아직 그럴 뜻이 없으신 모양이다. 아버지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몇 있었다면, 그래서 그 친구의 말이라면 온 마음을 열어서 듣는 아버지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친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들에게 받은 힘으로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힘들면 가서 기대고, 또 내가 잘 자라서 그들에게 꼭 같은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 그대들이 내게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알게 해야겠다.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1-1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바람이 차다. 두어 번의 여행으로 한국보다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있는 날씨는 방심하기에 딱 좋을 만큼의 추위다. 한국의 추위가 정면으로 몰아쳐오는 것이었다면 이 곳의 추위는 바닥으로 낮게 깔려서 온다. 봄이 코앞인 것 같아서 한 낮의 느낌은 겨울을 이미 지나 보낸 듯한데 몸의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덤벼오는 추위는 스며들 듯이 온 몸을 감았다. 2월의 얇고 낮은 추위가 바다 건너 온 유학생을 처음 맞았다.
유학원에서 나온 가이드를 따라 짐짝처럼 실려 한 학기 동안 중국어를 배울 학교로 간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 해야 한 줌이 채 되지 않고, 가이드가 없다면 국제 미아 되기 딱이니 짐짝보다 나을 것도 없는 셈이다. 몇 장의 뜻 모를 종이에 이름을 쓰고 몇 권의 책을 정신 없이 받았다. 수속이 끝났다.

역할을 다한 가이드는 돌아갔다. 임시숙소로 배정 받은 방은 큰 길가에 있었다. 룸메이트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였다. 인사는 어색했다. 겨우 며칠 동안의 인연일 것을 서로 알았다. 짧게 인사하고, 룸메이트는 다른 수속을 위해 나가고, 해가 지고, 방은 넓었고, 방을 가득 채운 공기의 질감은 낯설었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 시작은 언제나 무서운 것이다. 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고,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도 없는 것이다. 상황이 내 뜻대로 움직여 준다는 보장도 없고,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작정한 목적지에 가 닿으리라는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인 것이다. 이제껏 지나온 많은 시작들을 생각하며 곧 익숙해 질 것이라고 다독여 보지만 그래도 공중에 뜬 마음은 좀처럼 낯선 땅에 내려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낯선 악기 소리가 산란한 마음을 깨웠다. 소리는 얇고 낮았다. 도로변에서 출발한 소리는 온통 비어서 막막한 공간 속으로 이른 봄 추위처럼 낮게 왔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인상적인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에 공간은 너무 낯설고 넓었고 긴 저녁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카메라를 들고 소리를 따라갔다.

맹인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차들을 등지고 앉아 얼후를 연주하고 계셨다. 중국의 전통 악기 얼후는 뱀가죽으로 덮은 울림통에 두 줄을 묶어 활로 켜서 소리를 낸다. 소리의 질감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이 십 수 년 만에 처음으로 긴 외국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제법 어울렸다. 할아버지의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한참을 들었다. 저 소리에라도 동화될 수 있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의 등 뒤로 자동차의 불빛들이 흐르듯이 가고, 할아버지와 나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갔다. 생경한 풍경이다. 사람들의 옷차림,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모습, 네온 사인 속에 들어 앉은 글씨들, 사람들이 지나며 내는 소리, 바람 속에 섞인 냄새. 무엇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손에 익은 카메라 하나만 겨우 익숙하다. 셔터를 만지작거리고 렌즈를 괜히 돌려본다. 할아버지 앞에 놓인 그릇에 동전 하나를 떨어트리고, 물었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 학교에 있는 유학생인데요.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보일 듯 말 듯,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단어로 대충 얽어낸 문장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내 질문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할아버지는 내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신 것인지, 그리고 내 요청에 대한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단지 단어의 부족함 때문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은 묘했다. 맹인이 사진에 대해 갖는 감상은 어떤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상을 포착해 액자에 담아 둔 장면은, 보이는 것과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할 그 앞에서 허락을 받는 나는 또 무엇인가? 멀찍한 곳에 떨어져 앉아서 최대한 작게 몸을 웅크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상하이, 긴 여행의 첫 사진이다.

글 쓰는 순서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2. 옥탑방 작업실에 사는 물고기

3. 예술가, 그 발칙한 이름

4. 강, 도시의 시작

5. 낡은 가을 오후의 산책

6. 상하이를 상하이답게 하기

7. 즈멍의 골목길

8. 여행, 길의 끝에서






시작합니다.

2009년 4월 18일 토요일

왼쪽 손바닥이 나갔다. 어제 운동 다녀와서 제법 큰 물집이 잡혔다. 일 때문에 밀려서 겨우 열흘 만에 운동을 갔더니 겨우 자리잡기 시작했던 손바닥 굳은살이 그 사이 풀려나고 있었던 모양이고, 지난 운동 때 깨먹은 죽도 때문에 새 죽도로 바꿨더니 손잡이 부분이 아직 거칠었던 모양이다. 이번 물집은 제법 커서, 가만 두면 다음 운동 때 더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얼른 새 살 돋으라고 물집 잡힌 부분을 걷어냈다. 쓰라린다. 샴푸할 때 내가 왼손 바닥에 샴푸를 받는다는 걸 오늘 아침에 처음 알았다. 한 손으로 머리 감고 한 손으로 로션 바르니 왼손 바닥이 막 그립다. 키보드에 손을 얹을 때도 왼손 바닥이 아랫부분에 닿는다는 걸 또 처음 알았다. 새 살이 돋고, 다시 벗겨지는 일을 두어 번 더 반복해야 손바닥은 단단하게 버텨둘 거다. 그 동안에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책 속에서, 모리 교수는 상처입은 제자에게 어서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상처의 바닥까지 내려가라고 말한다. 바닥에 닿으면 자연스럽게 바닥을 박차고 오를 수 있으니까, 애써 바둥거리지 말라고 일러 주신다. 나는 마음 급한 어린이니까, 얼른 떼어내고 새 살 돋으라고 아직 덜 아문 피부를 공기 중에 드러내고 만다. 이 정도는 버틸 만하다고 마냥 혼자 믿으면서.

아침에 인터넷에서 본 글 중에, 낙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낙타는 사람과 함께 사막을 건널 때, 힘든 내색을 잘 안 한다고 한다. 묵묵히 걷고, 든든하게 걷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때가 오면,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글은, 그런 낙타의 행위를 배신이라고 쓰고 있었다. 낙타 혼자 가는 길이었다면 그런 묵묵한 실천이 미덕이겠지만, 다른 존재와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에, 배신이라고 했다. 일방적 헌신이 미덕이 될 수 없는 관계가 동행이겠구나 싶었다. 내어줄 부분을 내어주고 받아줄 부분을 받아주는 연습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모나님은 언젠가 내게 그런 충고를 했는데, 상대방의 호의를 받아주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신세 지는 일에 서툰 반군은 밉지 않게 부탁하고 또 신세 지는 사람들 보면 그것도 참 좋은 재능인 듯해서 부럽다.

생각에 머물러 있던 일 몇 개를 진행시켜야겠다는 다짐. 더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일에 떠밀리고 쫓기기 전에, 내가 일을 몰아 가야한다는 다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애써 지우고, 가능한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한다는 자각. 그리고 아주 많이 늦기 전에, 꼭 야구장 응원을 가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엄마가 섬그늘에
乍浦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한가로운 어촌 풍경이 그려지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낮은 돌담장이 바닷가를 향해 열린 작은 집, 나무판을 끼워 만든 마룻바닥에 곱게 누운 아기를 상상한다. 그 아기에게 불어오는 바닷가 봄바람 같은 풍경들.
어촌이라는 단어를 바닷가와 동일시할 수 없는 시대에 산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의 해안선은 컨테이너 부두가 들어섰고 콘크리트로 말끔하게 마감한 부둣가에 육중한 화물선들이 정박했다. 도시의 바다에는 ‘漁’도 없고 ‘村’도 없다. 가끔, 바다의 너른 품이 아쉬울 때가 있다. 끝 간 데 없는 그 풍경 앞에서 딱히 무엇을 보겠다거나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이 없어도, 마냥 그 앞에 서고 싶은 때가 있기는 하다. 상하이 남쪽 어느 바닷가로 가면 그 곳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있고 그물도 있고 또 생선 비린내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자전거는 어촌으로 간다.
아침 지하철에 실려 송장까지 간 자전거는 곧장 남쪽으로 가서 황포강을 건넌다. 지도 상에는 강을 경계로 도로가 끊겨있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단어, ‘설마’. 도로는 강을 건너지 못 한 듯하지만 그래도 강의 양편 도로가 같은 이름으로 닿아 있으니 어쩌면 작은 다리라도 있지 않을까? 하다 못해 강 건너는 배라도 있지 않을까? 설마 없겠어? 내 자전거 말고도 제법 많은 탈 것들이 저 길의 끝으로 가는 듯한데, 설마 그 탈것들이 막다른 길을 향해 가는 거겠어? 설마 강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이야 생기겠어? 설마? 근거 없는 막연한 믿음에 기대어 자전거는 계속 가 보지만, 마음 한 구석 불안함을 속일 수는 없다. 마침내 도착한 강변, 아, 작은 부두가 보이고 익히 보던 입구가 보인다. 다행이다.





표를 끊고 배 타러 가는 길에 부두 콘크리트 위에서 버둥거리는 자라를 보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한낮의 콘크리트 위에 검은 몸으로 뒤척이고 있다. 곧 떠날 배를 앞에 둔 급한 마음은 얼른 집어서 강에 놓아주고 배에 올랐다. 배가 강의 가운데로 나아갈 때 돌아보니 다른 누군가 다시 자라를 집어서 물가에 놓아주고 있다. 다시 뭍으로 올라왔던 모양이다. 햇빛 내리는 그 바닥에서 검은 몸으로 빛 받고 있으면 온 몸이 끓어오를 텐데, 자라는 왜 그 뜨거운 바닥으로 다시 온 것일까? 어디로 가려고 했던 것일까? 전날 밤 기막힌 꿈이라도 꾼 것일까? 몇 번이나 놓여날 수 있을지 그 운이라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강을 건넌 자전거 앞으로 초록과 노란색의 바다가 펼친다. 밀인지 보리인지 알 길 없는 녹색 풀밭과 유채꽃의 밝은 노랑이 겹쳐져서 끝 간 데를 모르겠다. 초록의 냄새는 싱그럽고 노랑의 유채꽃은 여름의 풀비린내를 예비하는 알몸의 살냄새를 낮게 뿌려대고 있다.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자전거는 풀밭 가운데로 난 작은 흙길에 멈추어 선다. 혼자 헤매기 아까운 길이다. 데려와 함께 보고 싶은 사람들 얼굴이 봄풍경 위에 겹친다. 이 풍경을 혼자 독차지한다는 생각이 마냥 미안해진다.

송장에서 느릿느릿 다섯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닿았다. 발전소 지나서 한국 민박집에 숙소를 잡고 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바다를 보러 나간다. 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 들러 다음날 아침 상하이로 돌아갈 버스표를 끊었다. 상하이 남역까지는 한 시간 반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바다의 등장은 갑작스러웠다. 멀리에서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바다가 아니고, 공원의 끝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 검은 갯벌의 바다가 펼쳐진다. 눈은 검은 빛깔의 진흙을 한참 동안 밟아간 다음에야 멀리 거대한 물을 본다. 그리고 갑자기 불려 나오는 자라의 기억. 자라가 햇빛에 끓어오르는 제 몸을 부여잡고 기어 기어서 마침내 닿으려고 했던 곳이 여기는 아니었을까? 자라는, 길의 어디쯤에 있을까?





작은 만을 돌아서 골목길을 더듬어 가면 마침내 고깃배들이 묶여있고 생선 비린내가 펼친 어촌이다. 아침부터 달려온 자전거는 선창가에 눕고 더 나아갈 수 없는 여행자도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 지는 해를 본다. 굵은 밧줄에 감기고 검은 진흙에 붙들린 배들은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 하고 영영 여기에 묶일 듯하다. 해가 지고 바닷물이 들어오면, 내가 보지 못 하는 밤 어느 시간에 배는 출항할 것이다. 고깃배와 그 배에 올라탄 선원들은 같은 곳으로 갈 것인데, 선원은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고 배는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뭍으로 돌아오기 위해 가고 배는 바다로 가기 위해 정박하는 듯하다.

여행이 주는 위로는 계통 없는 것이다. 길의 풍경 앞에 서고서야 비로소 내 어느 한 구석에 위로를 받아줄 틈이 있었다고 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안에 풍경의 위로를 받을 틈이 있었던 것일까? 바닷가에 부는 오후 바람은 편안하고 위로 받는 마음도 더불어 고요하다.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배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바다에 다녀왔다. 바다의 등장은 갑작스러웠다.

한 달쯤 걸려서 이상에게 보낼 답장을 다 썼다. 이상은 편지마다에 책갈피를 넣어서 보내주었는데, 나는 게으르고 또 편지 봉투에 넣을 게 마땅찮아서 겨우 명함 한 장 넣었다. 명함이라... 이상이라면 명함을 명함 아니게 받아 줄 것을 안다. 편지 안에서, 몇 년째 아무 곳에도 하지 않던 칼 이야기를 다시 했다. 잊은 줄 알았다. 칼은 더 이상 어떤 화두도 아닌 줄 알았다. 내가 여전히 한 자루 칼에 기대어 있고 끝내 닿지 못 할 곳을 향해 계속 한 자루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내 안으로 가지런하기, 온 몸으로 낮아지기. 제법 좋은 칼을 갈아 가고 있구나 싶다.

나보다 어리지만 내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경훈이와는 어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녀석은 와이프와 함께 먹을 술국을 아마도 삥뜯어서 갖고 온 듯하다. 같이 먹자고 소주 한 병도 갖고 왔는데, 나는 겨우 물잔으로 회답했다. 아깝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나는 중고 씨디 두 장을 사고, 편의점 와인 코너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던가. 꼭 한 잔 하고 싶었는데, 혼자 먹으면 일 년을 먹을 것 같은 와인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한참 고민했다. 녀석이 그렇게 올 줄 알았다만 한 병 질러 놓을 것을. 술 한 잔이 참 고픈 날.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도 가물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존재마다의 탄생 때마다 저 끝에서 달려와 맺히고 폭발하는 우주와 우주의 맥박 같은 갈등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제법 몇 년 떠벌리기도 했었는데.

숫자로 따지면 분명하게 어린 효빈이는, 도대체 어떤 시간을 거쳐온 것인지 가끔씩 던지는 한 마디 속에 막강한 내공을 언듯 보이고는 한다. 저 나이에 저런 내공이라면 도대체 저 아이가 내 나이쯤 되면 어떤 말들을 하게 될까? 기대가 된다. 효빈이에게 들려준 협곡의 양편에 앉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 십 년은 된 것이다.

우연찮게 지난 생각의 토막들을 불러오게 되는 요즘이다. 그 때쯤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치기 어린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생각의 바탕에서 이렇게 걸어온 지금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나는, 자랐다.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감정을 다만 소비시키고 마는 문장은 배설 외에 무엇도 안 된다. 그러면서 이런 문장들이나 쓰다니.

2009년 4월 5일 일요일

프랑스가 자랑하는 정신 톨레랑스 tolerance는 한국에서 '관용'이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정신.

톨레랑스의 정신은 긍정.에 가까운 것인가 싶다. 나와 다른 방식을 내치지 않고, 그것이 너의 방식이라고 긍정하는 일. 타인의 방식에 동의하고 함께 하지 않아도,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간격을 다만 긍정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운다. 오래도록,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같은 민족이, 같은 피붙이가, 또 같은 공동체 안에서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슴으로 안 것은 최근이었던가? 아니면 그 보다는 좀 더 일렀던가?

물론,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도 여전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아무래도 이명박 일당을 긍정하는 일은 불가능이라고 여긴다. 개념 없는 것들 하고는.

월요일 아침부터 또 이러고 있다.
작업이나 하자.
밀린 일들 하겠다고 작정한 일요일이다. 늦잠 약간, 청소 대충, 낮잠 조금 많이, 옥수수 삶아 먹고, 대충 빈둥거리다 보니 해 떨어졌다. 방해 안 될 음악 골라 두고 제법 밀린 메일들 답장을 부지런히 쓰니 밤이 늦었다. 밀린 일들은?

이상.이 보내준 편지 두 통의 무게감이 좋다. 나는 아직 첫 번째 답장을 쓰는 중인데 두 번째 편지가 왔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공들인 답장을 해야겠다. 어쩌나, 두어 장은 수첩에, 두어 장은 메모지에 써 두었는데. 봉투에라도 공을 들일까. 아는 사람들의 주소를 물어두어야겠다. 뭐 게으른 반군이니까, 게다가 편지는 공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거니까 그리 쉽게 쓰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물어 두었다가 이 사무치는 봄에 사방으로 편지 날려야겠다.

결국에는 혼자 서는 것이니까, 게다가 나는 일반적.이라는 수식과는 조금 다른 모양으로 살게 되어버렸으니까, 나이.라는 게 별로 걸릴 게 없다.만, 일단 관계라는 걸 두고 보면 무시하고 지내던 숫자가 도드라진다. 더구나 존대가 분명한 한국인의 삶 속에서라면 더더욱. 부끄럽게 채워온 것 같진 않은데, 딱히 거창하게 채운 것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아직 사방이 거칠고, 나는 아직 무엇이든 덤벼서 깨질 수 있을 듯한데, 사방에서 이제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시선들이 무겁다. 어쩌나. 결국엔 혼자이겠지만, 내 시작은 혼자가 아니었으니 멋대로 살 수도 없는 노릇. 기꺼이 어깨에 짊어질 주변의 무게들. 거 참, 오늘 문장들 지저분하네.

퇴고.를 시작해야겠다. 더 미룰 수 없으니까, 제법 그럴듯한 수정안도 나왔으니까, 이제 엉덩이 좀 무겁게 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은 꼬박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만들어야겠다.

밤이 늦었으니, 이제 일 좀 해야겠다.

2009년 4월 3일 금요일



자전거 탈 때 입는 방풍 외투에 청바지, 게다가 여름용 중절모라니. 어색한 조합이네. 괜찮아. 몇 시간 후에 비행기는 바닷가에 내릴 테고, 내 작은 가방 속엔 여름 바다에 어울리는 하얀 셔츠 두 장과 움직이기 편한 반바지가 들어 있으니까.

하늘을 가득 덮은 비행기의 구름을 상상하면 될까? 하늘이 막혀서, 너무 많은 비행기 때문에 하늘이 밀려서 제 시간에 이륙할 수 없다니. 대충 책을 읽고 편지도 쓰면서 시간을 때우면 된다지만, 편지 쓰고 책 읽는 걸 꼭 고함지르며 통화하는 아저씨를 뒤에 둔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할 이유는 없잖아?

오늘의 테마는 기다림.쯤으로 하면 되나? 한 시간을 늦게 뜬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에 오니 예약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 내가 예약한 게 아니니 내가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저들끼리 엉킨 연락을 풀고 방을 마련하는 동안 너르고 높은 로비 한 켠에 구겨진다. 조급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방에 가서 할 일이란 게 널부러져 책이나 뒤적거리는 건데, 로비에도 여름바람은 불고 책은 여기에서도 읽을 수 있으니까.

짐 풀고 나를 여기까지 불러온 사람의 비서를 만나서 가볍게 차 한 잔.까지는 좋았다. 나른한 휴가에 대한 환상은 딱 여기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뭔가 박자가 안 맞는다. 행사? 촬영? 무슨 말인가? 니네 비서는 그냥 가서 골프 치라던데? 난 못 친다니까 그럼 그냥 쉬고 가라던데? 내 짐을 봤냐? 나 그냥 가방 하나로 왔단 말이다! 휴가가 아니라 일 때문에 불렀다는 통보. 나와 연락한 다른 비서와 사이에 오해가 있었던 모양. 그냥 와서 놀고 가라던 약속은 어디 간 거지?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골프 대회며 대가 없는 휴가라니. 더 의심하지 않은 내 탓이다. 그나저나 어쩌나, 휴가라고 떡하니 믿고 장비도 안 가져 왔는데. 일은 터져 버렸다. 호텔 행사를 주로 찍는 현지 포토에게 급하게 연락해서 장비를 빌려보려고 하지만 불가능. 사방에 수소문해도 불가능. 제발, 아무 거나 괜찮으니 DSLR 바디 하나랑 렌즈 두 개만 빌려 봐봐. 제발. 응? 내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 땀을 저들은 아나? 게눈 달린 똑딱이 DP1 하나 밖에 없다니 어디서 들은 말은 있어서
“아, 그거 라이카 아냐? 그것만 해도 좋아.”
라이카는 개뿔. 모양만 대충 네모나고 게눈이나 달려 있으면 전부 비슷한 줄 안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믿어주니 고맙다.

계획을 수정하고 작전을 세우자. DP1의 결과물은 아쉬울 게 없는 수준이지만, 바디의 기계적 성능은 누구나 인정하는 최악. 게다가 28mm 단렌즈 화각. 고감도 노이즈는 상상 이상인데가, 한 장 찍으면 저장하는데 5초는 걸린다. 조루 베터리 겨우 두 개, 그리고 100장도 채 안 남은 메모리 카드. 이 일은 어쩐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어떻게든 해낼 걸 안다는 듯 바라보는 저 눈빛들을 어이 하리오. 알았다. 그렇다면, 최대한 광각의 특징을 살린 사진을 찍자. 그래서 광각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서,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하자. 그러니까 광각 하나 밖에 없다는 걸 들키지 않고, 광각의 사진만이 매력적이어서 다른 화각은 필요도 없었다는 인상을 만들어 주자. 아, 적어 놓고 보니 뭔가 그럴 듯하다.

섬에서 빛은 깊이까지 닿는다. 흐린 날 잠깐 동안 드러나는 빛 아래서조차 온갖 색들이 바로 그 색.으로 드러나고 온갖 대기의 질감도 바삭거린다.

주어진 과제는 골프대회 스케치. 그것도 한 사람만. 골프와 관련된 광고사진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빛이 낮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시간을 노린 것들이다. 멀리에서부터 걸어오는 인물이 부각되고 빛은 겹쳐진 언덕들의 세밀한 질감을 화면 안에 드러낸다. 여기에서 문제는 생긴다. 내 손 안에는 심도 확보도 안 되는 28mm 단렌즈 똑딱이 하나가 들려있을 뿐이고, 그들의 상상 속에는 잡지 속 광고 사진이 들어 있을 뿐이고, 행사는 열 시에 시작해서 축하 인사 몇 마디 하고 필드로 나가니 해는 중천에 떴을 뿐이고. 적어놓으니 제법 그럴 듯했던 작전은 흔적이 없다. 실패는 단호하고 명백하다.

저녁 행사가 시작되기 전 빈 무대를 채운 남방계 밴드. 남자 셋이 악기를 연주하고 여자 보컬이 노래한다. 가수란 멋진 사람들이다. 무엇도 없이 오로지 목소리 하나로 공간의 질감을 바꾼다. 그러니까 그 작은(또는 큰) 몸 안에 거대한 힘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필요하면 그저 소리를 열어내면 끝이다. 한 방이다. 장비 안 가져왔다고 한 방에 바보가 되어버린 사진가는 괜히 작아진다. 노래를 배워볼까?







마지막 날은 일정이 없고 돌아가는 비행기는 저녁 예약이라 종일 빈둥거린다. 아침 먹고 바닷가에 누워 제대로 노닥거리기. 바람이 세게 불어서 모래가 온 몸으로 침투한다. 파도도 높다. 저 바다 속으로 러시아 관광객들과 중국 관광객들이 뛰어든다. 제 돈 주고 왔다면 나라도 시간 아까워서 한 번이라도 더 바닷물로 뛰어들겠다만, 아침부터 바닷물에 뛰어들 생각은 별로 안 난다. 게다가 흐린 하늘에 이 바람에서야. 대신 점심 먹은 뒤부터 오후 시간 내내 호텔 수영장을 전세 내기.

반바지를 벗고 슬리퍼도 집어 넣는다. 짐 정리하고 상하이로 돌아가서 입을 외투를 다시 챙겼다. 체크 아웃 전 마무리는 야외 테이블에서 라면 한 그릇이다. 바람이 좋다. 이 바람 앞에 왜 조금 더 일찍 나 앉지 못 했다 싶은 바람이다. 걱정했던 일은 끝났다. 돌아가서 작업해 보아야 정확한 사태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마무리는 된 셈이다. 그랬다.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 그래서 가끔 힘들 때는 ‘지금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대부분의 버티기는 일종의 성취감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금을 버티자’ 정도까지는 봐 줄 만한데, ‘’어떻게든’ 지금’만’ 버티면 된다’는 정도까지 가면 이건 좀 문제가 있다. 그런 어쩔 수 없는 버티기의 반복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조금씩 허문다. 그렇게 버텨서 얻어낸 결과물이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모든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나는 그 모든 마디에서 힘주어 디디고 싶다.



파란만장 하이난 출장기. 끝.

2009년 3월 30일 월요일

"그 때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서 말싸움을 하면 아마 그 때 내가 이길 거야. 그 때는 내가 좀 셋잖어. 뭐, 지금의 나는 웃지 않을까? 그러면서 생각하겠지. 아, 저 녀석이 방향을 잘 잡아서 잘 커야 할 텐데."

"요즘은 생각해. 오직 모를 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 같고, 정말로 진심으로 모르는 거. 그렇게 되는 생각을 해. 낮아지겠다는 다짐은 역시 아는데 모르는 척 하겠다는 뜻 같고, 정말로 내가 처음부터 가장 낮은 곳에 있었던 것처럼."

메신저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혜와 나눈 대화들. 처음 만난 것이 봄날의 학교 도서관 앞. 잎이 파랬고 바람이 따뜻했다.
"오빠는 생각 없이 지내서 참 좋겠어요." 지혜가 내게 건넨 첫 마디. 요즘에도 우리가 만나면 꺼내놓고 웃는 이야기. 내가 생각이 없나?

장비 잔뜩 지고 출장갈 때면, 서류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비행기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이면 저런 단촐한 모습으로 길을 떠나볼까 했다. 한국 오고 갈 때 짐 부풀리는 걸 지독하게 피하려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인 듯싶다. 출장을 빙자해서 놀고 쉬러 간다. 바닷가로 간다. 이번에는 카메라 장비 하나도 없다. 똑딱이 카메라 하나만 챙겼다. 노트북도 안 가져 간다. 이메일은 미리 자동답장 기능으로 설정해 두었다. 초대해 주는 사람 체면도 있는 거니까, 깔끔하게 입을 흰 셔츠 두 장, 그리고 이번 여름에 입으려고 사 둔 등산용 반바지, 책 한 권과 원고 뭉치. 맞다, 수영복. 쉬엄쉬엄 느리게 느리게 나른하게 햇볕에 널린 빨래마냥 널부러져 있다가 오려고 한다. 새벽에는 바다로 가고 저녁에는 수영장으로 가면서 물 속에 떠다니다가 와야겠다. 심심하면 책 읽고, 엽서도 쓰고, 또 원고도 써야겠다. 어쨌든 빨리 책이 되어 나와야 하는 거니까.

속도나 방향의 전환.같은 것.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바라는 것들. 눈 앞에 닥친 여러 상황에 대한 시원한 답들이, 널부러진 빨래 위로 내려와 앉아 주기를.

2009년 3월 29일 일요일

흐린 일요일 오후

운동화처럼 신고 다니는, 비 맞은 구두에 약칠해서 그늘에 두었다. 대신 등산화끈 질끈 동여매고, 옷도 등산복 비슷하게 입고 쌀 사러 간다. 여행가는 기분으로. 마침 들고 나간 책도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 책 쓰는데 참고하라고 쥐루 누나가 보내준 책이다. 잘 나가는 소설가답게 작가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재주가 좋다. 소소한 사건들을 씨줄 날줄 엮듯이 이어서 구성을 탄탄하게 하고 문장들은 재기 발랄해서 참 재미있다. 재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김사량이 중국으로 간 길을 따라 가는 다큐멘터리 이야기쯤에 이르면 작가적 사색의 내공도 드러난다. 좋은 책이고 많이 참고가 될 책이다.

근처 시장으로 가서 우선 김치찌개에 들어갈 마늘과 양파를 하나씩 사고, 옥수수도 하나쯤 사려다가 별로 좋은 녀석이 안 보여서 관둔다. 입구로 돌아나오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눈치보다가 어두운 계단으로 도망친다. 같이 안 놀아줄 모양이다. 비싸게 군다. 쌀집에서 그 중에 좋은 쌀 한 포대를 사서 어깨에 짊어지고 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쌀 떨어진 지 일주일이 넘었고, 며칠 동안 내 아침은 삼양라면과 짜파게티를 번갈았다.

에프상하이에서 만난 오래된미래.님이 월드비전 참가를 압박하셨다. 기꺼운 마음으로 하겠다 하겠다 하다가 오늘에야 등록한다. 내가 보내는 많지 않은, 그러나 적지도 않은 돈으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어느 땅의 아이가 밥을 먹고 자라겠구나. 밥만 먹지 않고 어쩌면 공부도 하며 자라겠구나 싶다. 굳이 해외 아동이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를 지독한 한국인으로 키워낸 한국의 민족주의 교육을 원망할 때가 있다고 답해야겠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인으로 살겠지만, 내 다음 세대는 당당한 지구인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어줍잖은 영토의 경계를 나누고 그 경계 밖에 있는 것들을 향해 날 세우는 것을 당연하게 가르친 교육은 사기다. 네가 버티지 않으면 경계 밖의 것들이 와서 너를 해치고 네 주변의 것들을 모두 가져갈 것이라는 내부적 협박이다. 교육은 그렇게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을 나누고 바깥 것들을 미워하게 가르쳤다. 도울 수 있다면, 내가 인지하는 공간의 가장 낮은 곳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주인이 되지 못 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일이 한 때 유행처럼 보인 적이 있다. 괜히 생각 없이 숟가락 하나 더하는 것 같아서 꺼리다가, 그런 유행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되겠다 싶어서 떠밀리는 마음으로 덜컥 신청했다. 자신에 대한 어떤 기대는 기꺼이 받아내기도 하고, 어떤 기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내기도 한다. 한 존재의 기대를 하나의 몸으로 받아내는 일은 무겁다. 집에서 풀 하나 키울 때도 그 풀이 제 온 생명을 내 보살핌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이제 저 산 넘고 바다 건넌 어디에서, 한 아이가 내게 그 성장을 의탁하게 되었다. 아, 한 삶이 어떻게 다른 한 삶을 온전히 받아서 버티어 내나?

이 나이까지 자란 나를 보면 나는 참 많은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제대로 배울 기회도 평등하게 나눌 수 없었던 부모님 세대만 보아도 그렇다. 배움에 대한 앞선 세대의 갈증들. 당신을 입을 것 쓸 것 아껴가며 내게 주신 것들이 얼마였던지. 덕분에 나는 잘 자랐다. 빌어먹으실 국경 이라는 틀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최소한의 기회는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삶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간절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이미 있는 기회를 버리고 대충 살겠다는 것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기회조차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이나 기회를 자각하지 못 하는 청년들을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곳 유학생들에 대한 생각도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는데도 대충 사는 것들이나 제 한 몸 살 찌우며 살겠다는 것들은, 좀 맞아야 한다. 어쨌든, 힘들게 지낸 몇 년을 지나 이제 이 정도 돈을 내 힘으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게 작은 일이 아니다. 이게 돌려주기.의 시작이 될 모양이다. 인터넷 뱅킹 클릭 몇 번으로 끝난 이 작은 선택이, 어쩌면 내 다음 삶의 방향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더듬이가 그렇게 말한다.

2009년 3월 25일 수요일

눈이 따끔거리는 아침

미리 약속을 했었다. 미팅 끝나고 연락 드리겠다고, 부르시니 가능하면 가겠노라고 했다. 미팅은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시작했고, 늦게 시작했으니 당연하게 늦게 끝났고, 집에 들러서 간단한 작업을 마무리하고 가겠다던 예정을 바꿔서, 남의 집에 너무 늦게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니까 곧장 모나님 댁으로 갔다.

늦은 자를 위해 마련된 음식은 보기에 맛깔스러웠고 먹기에 편했다. 반가운 봄나물 달래가 두부와 함께 무쳐져서 상에 올랐고, 소담하게 담긴 잡곡밥 옆에는 깨를 갈아넣은 된장국?을 닮은 국도 있었다. 보기만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상차림에 연신 감탄했다.

두어 시간을 작정했던 잡담은 길어졌다. 온갖 차를 꺼내 마시며 온갖 음악을 바꿔 들어가며 온갖 이야기들을 이었다. 고흐를 좋아하는 건치 어린이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원숭이와 얼굴 검은 할머니가 나오는 어릴 적 꿈에 대해 말하고, 도 닦은 사람들이 정말 공중부양을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정치가 생활 속에 들어와야 된다는 이야기는 시작은 했으나 호응이 없어서 흐지부지했고, 홍콩에 출장 간 메튜도 잠시 이야기 속에 등장했고, 개그는 타이밍이라는 전제에 모두 동의한 후 실습도 했다. 몇 번은 성공하고 몇 번은 실패했다. 실패는 응징당했다. 에프상하이의 새 맴버들을 어떻게 좀 더 빠르게 식구로 만들 것인가 생각하는 척 하다가, 술을 많이 마셨던 한 때의 무용담을 들으며 찬 홍차 몇 잔 마시고 잠을 못 잤던 볼링장의 전설을 되불러 오기도 했다. 늦게 빈손으로 찾아간 손님에게 모나님은 씨디 두 장을 덜컥 주셔서 나는 득템.했다. 고흐의 별 쏟아지는 밤이 표지로 그려진 노트도 받았는데, 서로간의 암묵적 동의 하에 수첩 주인은 건치 어린이가 되는 것으로 했다. 온갖 종교를 불러내서 결국은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아, 그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는지. 편집당한 이야기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이야기가 길어져서 새벽부터 촬영 들어가야 할 반군은 중간에 나왔다. 남은 두 분께, 참 고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을 잔뜩 전했는데, 얼마나 닿았는지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차마시며 노닥거리는 모임을 아예 정기 소모임으로 하자는 작당이 있었으나, 전개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다음에는 내 집에서 음악을 준비할 테니 마실거리 들고 오시라고 했다.

아, 잠 못 잔 아침의 뻑뻑한 눈이란.

2009년 3월 15일 일요일

수육

아는 형의 부탁으로 사진 촬영을 도와주러 갔다. 형의 여자친구분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올릴 주얼리 사진이었다. 주얼리 사진은 워낙 전문적인 분야인데다 나는 그 쪽 전문이 아니니 애써 나설 것은 아닌데 뭐 쇼핑몰용 사진이니 크게 부담가질 것은 없었다. 촬영을 도와주고 리터칭 방법도 간단하게 일러주었다.

고맙다는 뜻으로 그 분은 수육을 삶아서 내어 오셨는데, 이른 점심을 먹고 한참을 아무 것도 목 먹은 속은 쓰릴 정도로 아팠고, 허기진 속을 채우려고 얼른 몇 개 먹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더 아팠다. 빈 속이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오랜만에 수육을 제대로 먹을 기회였는데, 못 먹고 물러 나와야 하는가. 아 저 산처럼 쌓인 흰 비계덩어리여. 멀구나.

속이 점점 더 아파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먼저 간다고 하고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속이 쓰린 거랑은 어째 좀 다른 느낌. 설마? 지하철역까지 가볍게 뛰었다. 아, 체한 거구나. 너무 급하게 먹었구나. 아, 새우젓의 빈자리가 크구나.

집까지 오는 동안 가볍게 뛰고, 와서 소화제 먹으니 잘 때쯤에는 속이 편해진다. 자려고 눈 감으니 두고 온 수육이 아른거린다.

내 치열하고 슬픈 지난 주말 이야기다.

장 그르니예, 섬

장 그르니예, 섬

얇고 낡은 책이다. 종이는 바래서 누렇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함유선의 번역으로 1992년에 발행된 10쇄판이다. 조금 큰 수첩 크기의 책에는 사방 여백이 많고 글자들은 가운데 모여 있다. 글자들은 가장자리로부터 점점 바래가는 종이의 여전히 흰 부분으로 도망쳐 모여든 것 같아서 겨울 강에서 다리 아래 아직 얼지 않은 물로 모여서 추운 한 계절을 나는 고기떼를 닮았다.
제대할 때 부대에 있던 책 중에 몇 권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 중에 한 권이다. 지금도 책 앞에는 분류번호가 붙어 있다. 아끼는 책 중에 한 권이다. 아낀다기 보다는 든든한 책이고 든든하기 보다는 귀한 책이다. 가벼운 듯 깊은 사색의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시니 소설이니 하는 문장의 구분은 부질 없어 보인다. 언제나 까뮈의 이름을 업고 소개되는 장 그르니예는 까뮈의 문학적 스승이라고 알려져 있다. 까뮈의 문학적 성취 덕분에 더불어 알려질 수 있었으니까 장 그르니예는 까뮈에게 고마워할까? 아니면 언제나 까뮈라는 이름에 빌붙어 등장하며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 받지 못 하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할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화난 감정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다. 책에는 물루.라는 고양이 이야기가 한참 동안 나오는데,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사랑하던 고양이가 어느 날 나가서 심하게 다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이사를 해야 할 상황에 닥치고, 결국 고양이를 안락사 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그렇게 사랑한다던 고양이를 결국 안락사 시킨다는 결정은 위선이었고 기르던 동물의 삶을 마음대로 끊어낸다는 것은 인류라는 종족이 가진 오만이었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시간은 흘렀다. 몇 년이나 흘렀다. 물루는 여전히 안락사 당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분노하지 못 하겠다. 그 안락사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여전히 못 할 짓이지만, 다만 작가의 생각을 긍정해 주기로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알겠다.

책 퇴고 방향을 정했다. ‘상하이에 가 본 적 있습니까?’라는 가제를 가졌던, 이 도시에 대한 오로지 깊기만 한 열 두 꼭지의 문장으로 완성하겠다던 책은 여러 편집자와 출판사를 만족시키지 못 했다. 그러는 사이에 몇 달이 지났고, 예상했던 대로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원고의 부족한 부분들은 여름 풀처럼 자라서 이제는 사방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아, 이런 부족한 글을 묶어 책을 만들겠다고 했었구나. 그렇게 여기저기 보였었구나, 생각하니 부끄럽고 할 수 있다면 이미 나간 원고들을 모두 거두어 들이고 싶다. 책 속의 문장은 거칠고 서투르고 고집스러웠다. 그리고 괜히 힘 준 어깨마냥 높기만 했다. 책을 읽을 사람에 대한 고려도 없이 나는 그 사람의 책장만 생각했다. 어느 책장이든 내 책이 자리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다는 고집만 부렸다. 책은 ‘상하이, 7년의 여행’이라는 가제목으로 바꾼다. 한 명의 풋내기 졸업생이 어엿한 병아리 사진가가 되어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 무대로서 상하이는 다른 곳과 구분되어 도드라지는 매력을 드러낼 것이다. 상하이에 왔던 초기의 자료들을 찾기 위해 예전에 홈페이지로 쓰던 사이트를 열었다. 좀처럼 보지 않는 곳이다. 아, 그 곳의 나는 서투르고 섬세하고 따뜻했다. 그 때의 연장선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지금의 나와 어떤 연관성도 없는 듯 했다. 언젠가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게 부러운 모습이었다. 조금 엉성하긴 했지만, 그 때 문장이 지금보다 어쩌면 나았구나 싶기도 했다. 어찌나 위트 있는 문장을 구사하셨던지.

모나님과 쥐루 누나가 동시에 사다 준 손지연의 음악을 오늘 아침에야 들었다. 앨범 갖고 싶다고 에프상하이 게시판에 칭얼거렸더니 한국 다녀오시는 모나님이랑 한국에서 잠시 여행 온 쥐루 누나가 동시에 사다 주었다. 그것도 절판 된 2집을 뺀 1,3 집만. 차마 말은 못 하고, 두 분께 고맙게 받았다. 아직 서로는 이 사실을 모른다. 영원히 모르시기를.
마음에 드는 음악을 제대로 듣기에는 너무 늦지 않은 저녁시간이 좋다. 일정 공간을 제대로 채워 좋은 소리를 내려면 좋은 앰프 좋은 스피커도 있어야겠지만 좋은 공간도 있어야 하고 또 공간에 알맞은 볼륨이 되어야 한다. 내 집 거실에서 듣기 좋게 음악을 들으면 아랫집 윗집 눈치를 살짝 보아야 한다. 내가 워낙 민폐 끼치는 걸 못 하는 성격이니까 따지고 보면 내 걱정만큼 두 집이 신경을 쓰진 않을 것 같다만, 게다가 중국이니까 옆집에서 고성방가를 해도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눈치 살피는 나의 소심함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고른 시간이란 게 대기가 가라앉은 저녁 시간, 그 중에서 남들 잠들기 전이어야 되니까 대충 저녁 7시부터 9시 정도가 된다. 씨디를 받은 후 좀처럼 이 시간대에 집에 있을 여유가 없어서 씨디는 탐스러운 먹거리처럼 책상 위에서 개봉을 기다렸다. 더 기다리기 싫어서 오늘은 부러 새벽에 일어나 미리 앰프를 예열시키고 다른 일거리 좀 마친 후에 자리 잡고 앉았다. 밤 시간만큼이야 못 하겠지만, 아, 좋구나. 원고 정리하면서 들으려다가 양쪽 다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컴퓨터 밀어두고 음악만 들었다. 들으면서 슬쩍 이 음악을 어떻게 사진스터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김소월의 시와 비교해서 설명하면 되겠구나 싶어서 얼른 메모했다. 새로 시작한 스터디에는 제법 십 수 명이 참가하고, 배우려는 분들의 욕심도 대단해서 그 눈빛들과 마주치는 일은 즐겁다. 이번 스터디에서 나는 카메라 기초만 하기로 했는데, 그러니까 강평까지 넘어가면 사실은 월권이 되겠지만 그래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으니 해야겠다.



그만 쓰자. 잡담이다. 얼른 책이나 쓰자.

2009년 3월 13일 금요일

아, 파리넬리

작업해야 할 사진들 옆에 미뤄두고 새벽부터 영화 봤다.

얼마 전 혜림이가 살롱사진에 대해 물었다. 이제는 열등한 사진처럼 이야기되는 살롱사진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변호했다. 영화는 잘 찍은 한 장의 살롱사진을 보는 듯했다. 살롱사진은 사진이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아직 사진의 독자적 문법이 없을 때 회화를 추종하던 사진의 한 형태였다. 이후 다양한 사진가들에 의해 사진은 회화와 구분되는 사진만의 문법을 구축해 왔고 현대 사진에 이르면 사진은 더 이상 회화의 지위를 탐내지 않는다. 회화보다 현실에 가까이 들어간 사진은 예술의 지위 자체를 우습게 보기도 하고, 또 예술 사진은 회화와 다른 길을 통해 그 지위를 획득했다. 그래서 최신의 사진문법으로 무장하고 나름 치열하다는 자세로 사진을 하는 사람들에게 살롱사진은 우스워 보이고 이미 흘러간 과거의 유물처럼 받아들여진다. 잘 나가는 사진계에서 밀려난 사진은 역시나 시대에서 밀려난 이발소 벽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걸리거나 어느 식당 달력 안에 담겨서 고기 씹는 맛을 돋군다.

새롭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시대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생각은 여기 저기 남은 듯해서, 작가들은 어떻게든 다른 작품과 다른 세계를 펼쳐내려고 한다. 그 의지가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다른 작가들과 어쩔 수 없이 다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주객이 자리를 옮겨서 오로지 새롭기를 목표로 얕은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부작용도 생긴다. 인체를 기형적으로 변형시킨 인물화의 범람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한 작가가 다리를 길게 늘린 회화를 그려서 이슈가 되면 다른 작가를 팔을 길게 그린다. 그러면 또 다른 작가는 눈을 크게 그려보고 제 3의 작가는 눈을 지워버린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해석이란 것들은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다.

경극배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갔던 그들의 연습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무대 위의 일 분은 무대 아래서 십 년의 연습이다." 대충 기억하기에 이렇다. 그 때 나는 이 문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몰라서 물었고, 배우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 속에 담긴 뿌듯함이 남긴 인상이 아직 선명하다. 각각의 예술 장르는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형태를 개발해 왔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꾸만 빠르게 갈 것을 요구해서 지난 것들을 빨리 허물기를 주문한다. 시간이 쌓이며 만드는 무게감을 가볍게 본다. 좋은 살롱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그들이 들인 시간과 공력의 무게는 어줍잖은 아이디어 싸움이 함부로 낮추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롱사진이나 스트레이트 사진이나 순수예술 사진 모두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일 것이고, 그러니까 그 가치는 함께 존중받아야 한다. 서열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음악이 등장하고 화려한 색깔이 등장하고 귀족시대의 의상들이 등장하면서 듣고 보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그 바탕은 이야기에 두고 있는 듯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구성하고 화려하게 포장함으로써 참 보기에 좋은 영화가 된 듯하다. 새로운 기교를 넣어서 부풀리려고 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게 만든 영화 같았다. 사진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 영화는 거세당한 남자 성악가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여배우의 가슴은 어찌나 탐스러우시던지.

이제 사진 만져야겠다.

2009년 3월 12일 목요일

노래 이야기 몇 개

어제는 종일 비가 왔다. 머무르는 비가 아니라 한 번 쏟아지고 말 비라서 종일 제법 세차게 왔다. 일기예보에는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는데 새벽 나절에 비는 그친다. 하늘은 여전히 낮고 흐린데 빠르게 흐르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걸 보니 비는 더 안 올 모양이다. 그냥, 느낌이다. 바람이 좋아서, 외장하드에 들어있던 음악 꺼내서 듣는다. 컴퓨터로 음악을 들으면 포토샵 속도가 느려지고 또 따로 엠프도 있으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서 최근에 컴퓨터로 음악 듣는 일은 잘 없다. 대학교 입학하고 부터 조금씩 긁어모아둔 음악이니 제법 십 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음악들이다. 내 또래도 안 듣는 옛노래들부터 최신 유행곡 월 별로 모아둔 것까지 제법 있다. 역시, 음악 들으며 글을 적으면 도대체 방향을 잡을 수가 없구나.

음악여행 라라라. 무슨 개그도 아닌 것이 음악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요즘에 꼬박꼬박 챙겨 본다. 손지연.이라는 가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았고, 적우의 얼굴도 여기에서 처음 봤다. 강호동의 무릎팍도사. 이후로 기존 프로그램들이 개그쇼의 형식을 도입하는 듯한데, 어색할 것 같던 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인 듯하고, 가수를 불러놓고 노래 두어 곡 듣고 어색한 말 몇 마디 웃긴 척 하고 다시 노래 듣는 이 프로그램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진행방식은 그만그만한데, 불러세우는 가수들이 좋아서 그만하면 됐다 싶다.

이제는 떠나온 지 제법 된 내 작업실에는 낡고 큰 스피커가 네 귀퉁이에 있었다. 스피커보다 더 낡은 엠프도 있었다. 나보다 앞서 있었던 것들이다. 사람 귀가 간사하다는 것을 작업실에서 알았다. 그 낡은 것들에서 나와 나무 바닥을 울리며 내 귀에 닿던 소리는 컴퓨터 스피커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풍성함이었다. 2년 가까운 작업실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컴퓨터 스피커 소리는 귀가 아파서 얼마 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친 척 앰프를 샀다. 지름신의 가르침이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그저 저럼한 걸로 구색만 맞추면 되지 했던 것이 알아보는 사이에 점점 높아지고 높아져서 밥값 방값 걱정하던 그 때에 덜컥 분에 과한 앰프를 들였다. 내 집 거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앉은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몇 장의 씨디들.

음악은 그저 작업하는 동안, 딴짓하는 동안 배경처럼 흐르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앰프 사고 스피커 사고 씨디도 몇 장 사면서 알게 된 것은, 음악은 그냥 음악만 듣는 거다. 진공관을 예열시키고, 음악을 고르고, 따뜻한 물 한 잔 따라 와서 적당한 거리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음악 들으면, 좁은 거실에서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아, 음악은 행복한 것이구나,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음악에 대한 내 이해가 사진이나 문학에 대한 수준만큼 되었더라면 나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살았을 테지만, 아직 얕고 얕아서 도대체 모를 음악이 많다.

어떤 날은 문득 깨닫는 날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깨닫기도 하고 저녁 잠자리에 누워서 불끄고 깨닫기도 한다. 무엇을 깨달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 내가 자랐구나 싶기도 하고 나를 둘러싼 껍질의 한 쪽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흐리고 대지는 젖어 있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나는 조금씩 자라는 나를 느낀다. 아름다운 봄날의 흐린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메일 열었는데 호텔 촬영 의뢰가 왔다. 포트폴리오와 견적을 보내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눈치를 살펴야 하니까 의뢰가 촬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하나 둘 오는 연락이 반갑다. 이번엔, 티엔진이다.

새벽 맑은 정신에 적어두는 이런 주정같은 메모라니.

봄처녀 제 오시네






새벽 자전거는 들릴 듯 말 듯 콧노래 흥얼거리며 간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색동옷을 입으셨네.

봄과 처녀를 떼어놓을까? 아니면 봄처녀라고 붙여둘까? 떼어놓자니 두 단어의 개별성은 선명해지고 개별성의 두 단어 사이에서 생겨나는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단어 둘을 붙여서 ‘봄처녀’라고 쓰면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다. 봄은 잡스러운 기운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절이니까, 봄처녀가 좋겠다. 자전거는 어디쯤 와서 흩날리고 있을 봄처녀 색동 저고리 보러 바닷가로 간다.




봄은 떠나온 곳으로부터 온다. 대학시절 봄은 고등학교 너른 운동장을 몰아 다니는 모래바람이었고,바다 건너에서 맞는 봄은 고향 바닷가에 부는 비린내다. 봄에는 떠나온 모든 것이 그립고 봄바람은 가슴에 사무쳐서 이 계절을 지나는 일은 위태롭다. 위태로운 봄은 사태처럼 올 것이다. 한 번 두 번 신호를 보내다가 한 순간 와락, 덮쳐 올 것을 안다. 봄에 그리움은 꽃처럼 핀다. 아침 일곱 시 반, 집을 나선 자전거는 수주허를 따라 와이탄으로 가서 황포강을 건너는 배에 오른다. 주말 아침이라서 출근시간인데도 배는 제법 널널해 보인다. 자전거가 강을 건너가는 비용은 1.3원.








푸동으로 건너온 후 지도는 당분간 보지 않기로 한다. 저 동편 끝에는 너른 바다가 있다. 나침반 하나만 보며 가는 길, 개별 길들은 이름을 잃었다. 다만 방향성만 있는 길 위에서 자전거는 봄맞이 산책을 간다. 속도계도 보지 않기로 한다. 겨울용 자전거 복장도 벗어 던지고 가볍게 입고 나선 길, 지도를 포기한 자전거 앞에 지도에 나오지 않는 좁은 골목이며 흙길이 나와서 당황스러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준다.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간단한 음료수와 쵸코바 하나로 허기를 달랜다.












골목길과 번듯한 차도를 번갈아가며 네 시간을 달려서 자전거는 바닷가에 닿는다. 三甲港산지아강. 마음 속 목적지로 두었던 곳이다. 몇 년 전에 버스를 타고 왔던 곳인데, 특별히 볼 것이라고는 없는 누런 바다라는 기억만 있다. 그 ‘별 볼 것은 없는 것’이 보고 싶어질 줄 몰랐다. 살아가며 보면 그런 때도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하고, 한참이 지나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했고,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보았었구나 싶은 기억의 흔적만 남는 때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다만 보지 않으며 지나온 것들이었다. 무서워서 피하고 피했다는 사실이 다시 무서워져서 감추고 만다. 보이는 것들이 보이는 대로는 아닐 것이다. 산만큼 커 보이는 화물선도 수평선 끝으로 멀어져 가면 점으로 보일 듯하고, 저 끝에 한 점도 눈 앞까지 오면 태산만큼 클 듯하다. 도대체 모를 길 위에서 자전거는 방향을 잃고 다만 가는 것인데, 여정이 길어지면 자전거의 길은 결국 사람의 안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자전거 여행자들의 목적지는 결국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그 어디쯤이다.





이른 봄빛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바닷가 둑에 누워 낮잠도 잔다. 바닷가의 낮잠은 깊지 않아서 바람과 소리가 옅은 잠 속으로 들어온다. 멀리에서 지나가는 큰 배는 느리고 낮은 울음소리를 낸다. 항구에 정박하기를 기다리는 화물선들이 바다 가운데 떠 있다. 봄도 저기 어디쯤에 떠서 곧 이 땅에 닿을 것이다. 바다는 그 가운데 뜬 배와 그 앞을 지나는 작은 배와 물의 끝에서 그 배들을 바라보는 사람까지 모두 담아서 다만 넓고 깊어 보인다.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앉아서 마주보지 않고 멀리 먼 곳을 함께 본다. 그 자세로 오래들 있는다.







쓰고 있던 고글을 벗으니 부신 하늘이 푸른 것을 알겠다. 오늘 하늘이 파랗다. 깊게 푸른 것이 아니고 성글게 푸르다. 순수하고 고집스럽게 푸른 것이 아니고 온갖 것들 오는대로 모두 받아준 푸른색이다. 그래서 저 빛깔 하늘 속에는 온갖 것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향 뒷산에 지천으로 핀 봄나물 같은 하늘이다.





길게 한숨 자고 통과의례처럼 사발면 하나 먹고 난삽하게 가지 친 감정들을 쳐낸다. 바닷가의 감정들을 그대로 끌고 도시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먼지가 곱게 앉은 버스 종점의 편의점에는 사발면 먹는 동안 버스가 안 들어 오기를 빌어야 한다. 아, 라면은 다 익었고 저기 버스 온다. 흙먼지를 날리며.

아침에 탔던 배를 다 저녁에 타고 되돌아 간다. 시내로 들어오며 자전거는 다시 생활들 속으로 들어왔다. 채소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는 자전거들과 오토바이들 속으로 자전거는 간다. 오전에 맑던 하늘이 흐려진다.


바퀴 구른 거리 91km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 1

새벽에 버스는 아직 오지 않을 모양이다. 첫 버스를 기다리는데 풀숲에서 고양이가 운다. 작고 불안한 소리로 운다. 쪼그리고 앉아서 부르니까 회색털 고양이가 온다. 사람 손에 길러졌던 모양이다. 주저주저하다가 와서는 내 주변을 돌면서 몸을 비빈다. 아직 새끼다. 만져보니 목줄도 있다. 아, 사람 집에서 살았었구나. 어떻게 할까 하다가 목줄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만져보는데 어떤 방식으로 잠긴 것인지 잘 안 풀린다. 고양이는 장난치는 줄 알고 손가락을 깨물고 무릎 위로 올라와 배를 보이며 눕는다. 발톱 때문에 바지 여기저기가 상처난다. 안 된다. 이 놈아.

가만 보니 풀숲에 노란, 조금 덩치가 큰 녀석이 하나 더 있다. 이 녀석은 제법 사람을 경계하고 다가오지 않는다. 회색 새끼 고양이가 노란색 고양이를 따른다. 집 나와서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 그런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새끼 고양이는 노란색 고양이와 나 사이를 오고 가며 바쁘다. 고양이가 울면 풀숲 안으로 들어갔다가, 내가 손짓하고 부르면 무릎으로 올라온다.

버스 오는지 보는 사이에 노란색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이리 오라고 부르니 새끼 고양이는 몇 번 뒤돌아보며 멈칫거리다가 이내 노란 고양이를 따라 갔다. 갈등 끝의 결심 같은 걸 본 것 같다. 좋은 길잡이를 만난 고양이가 잘 살기를 빈다. 아, 끊어주지 못한 목줄이 아쉽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택시비가 아깝지만 어쩔 수 있나. 새벽 택시는 빠르다. 새벽 고가를 달리는 쾌감으로, 택시는 한 낮의 갈증을 달랠 모양이다.










# 2, # 3

난징루를 따라 끝까지 가면 그 곳에서 지하도를 통해 와이탄 강변에 갈 수 있다. 고흐의 그림들이 잔뜩 걸려있는 지하통로는 아마 그 옆에 있는 네덜란드 은행에서 돈을 댄 모양이다. 여기 지하도를 지나며 여기 그림들을 볼 때마다 이 그림들을 촬영한 사진가가 궁금해진다. 사진들은 고흐의 붓질을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일반적인 그림 촬영 조명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전체 밝기를 유지하는 동시에 측면에서 강한 하이라이트 광원을 써서 고흐의 붓질은 사진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실력있는 사진가의 잘 찍은 사진이다. 김훈의 문장이 그런 것처럼, 고흐의 붓질은 그의 숨을 갉아서 캔버스에 뿌려둔 것같다. 그래서 마침내 더 갉아낼 숨이 없을 때, 고흐는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고흐의 그림같은 사진을 찍겠다고 벼른 게 몇 년인데, 게으른 사진가는 그럴 능력도, 용기도 없다. 나는 길게 살고 싶다.













# 4, # 5, #6

공사현장은 일찍부터 움직인다. 벌판에 높이를 쌓고 또 허물고 다시 쌓는 일은 도시에서 익숙한 풍경인데, 상하이는 그 익숙한 것이 너무 많아서 마치 상하이의 특징적인 모습인 듯하다. 초봄 아침에 바람은 아직 거세고 기온은 찬데, 노동자들의 작업복과 헬맷은 어찌나 원색으로 찬란들 하신지.








28mm 화각은 마음에 든다. 사진은 시원하고 통쾌하다. 그래도 자꾸만 비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5mm의 화각은 어려웠지만 비장했었다는 감상같은 것. 그래도 28mm를 계속 써야겠다. 쉽고 경쾌한 화각이다.

2009년 3월 6일 금요일

살아가는 일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버티듯 사는 하루는 힘겹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앞을 막아선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 세상을 버티며 있는 것일까? 나이 들어가는 아들의 반쪽을 걱정하는 어머니께 푸념처럼 물었던 적이 있다. 한 몸도 거추장스러운데 제 발로 걸어 어디를 가란 말인가.

"어머니, 이 험한 세상에 또 아이를 낳아서 살게 해야 되나요? 사는 건 힘든데 그냥 나 하나로 그 어려움을 그치면 안 될까요?"

"여봐, 아들. 고생이라니? 생각해 봐. 네가 살아온 날이 고생이었어? 얼마나 재밌는 일이 많았는데! 아이를 낳아서 이 험한 세상을 또 겪게 한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재미난 세상을 살게 해주겠다고 생각해야지."

아, 어머니는 위대하다. 겨우 서른 생을 살아온 아들은 찍 소리 못 하고 두 손 든다. 그래, 살아온 날들은 얼마나 빛나는 하루들이었던가. 나는 그 빛들 속에서 또 얼마나 속으로 빛나며 나를 채워 왔었나. 이 신나고 재미난 세상을 나 혼자만 누릴 것은 아니구나. 살면서 내가 배우고 느낀 재미를 내 아이에게 알려주어야겠구나.

대부분의 일들이 양면성을 갖지만, 어떤 것들은 의심할 것 없이 마냥 아름다운 것도 있다. 사랑도 그 중에 하나다. 짝사랑의 설래는 마음도 좋고, 갓 시작된 풋풋한 마음도 좋다. 가까워질 듯 여전히 그대로인 거리를 재는 긴장감도 좋고, 농익은 질척함도 좋다. 빛 바래가는 건조한 느낌도 나쁠 것 없고, 큰 자리 비어버린 뻥 뚤린 허전함도 뭐 거쳐야 할 것이다. 또래 친구들 중에 사랑에 대해 무덤덤한 녀석들을 보면 내 마음이 가빠진다. 아, 두 번 사는 세상 아닌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

삼 주째 내리던 비가 그친다. 살짝살짝 그친다. 올듯 안 올듯 비가 그치고 날듯 말듯 햇빛도 나온다. 그렇게 봄이 올 모양이다. 나는 잘 쉬었다. 깊은 잠을 자고 영화도 보고 이런 저런 생각도 했다. 몸이 부드러워지고 정신은 말끔해졌다. 새로 검도를 시작했는데 칼을 휘두르는 근육은 많이 비어 있었고, 대신 빈 속에서 소리는 야무지게 뭉쳐 나왔다. 마침 일거리도 안 들어와서 아무 긴장도 없었다. 날 개이니 하나둘 작업 연락도 온다. 일요일에는 비가 안 온다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가보아야겠다. 토요일에 있을 사진스터디는 일찍 마쳐야겠다. 일요일을 위해. 그리고 만약에 비가 오면, 멀리 친구가 보내온 편지 한 통과 답장 쓸 종이 몇 장 들고 어디 편한 자리라도 찾아 나가야겠다.

사랑하자.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2009년 2월 25일 수요일

블로그를 통한 책읽기 모임

상처.에 대한 일반론적 백과사전

어촌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사진가를 통한 사진사 정리

다시, 검도


요즘 할까 말까 고민중인, 또는 하기로 결심한 것들.



열흘 넘게 비 온다. 일주일 또 비 올 모양이다. 한국에 봄 온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여기는 낮 기온 10도 아래에서 맴을 돈다. 이 비가 끝나면, 봄이 와락, 올 것 같다. 비구름 너머에서 숨 죽이고 덤벼들 때를 기다리는 봄이 있다. 와라, 봄.

2009년 2월 22일 일요일

dp1





새 카메라는 시그마에서 만든 무늬만 똑딱이 DP1이다. 새로 샀다.

내 밥줄로 쓰고 있는 SLR이 갖는 몇 가지 단점을 극복해보려는 시도다.

3년 넘게 일상적으로 45mm 화각을 써 왔다. 멀리 있는 것을 당기지 못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을 밀어내지도 못 하는 화각이어서 이 랜즈를 쓰는 동안 나는 피사체 앞에 정면으로 마주서는 연습을 했다. 이집트인들이 그려내던 정면의 그림들처럼, 렌즈는 피사체를 보기 좋게 포장하지 말고 단지 본질 앞에 서기를 요구했다. 스며들기도 했고 덥쳐들기도 했던, 본질을 보겠다는 시도는 많은 부분에서 실패했다.

새 카메라는 28mm 고정 화각이다. 광각이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넓게 보이고 멀게 보인다. 코 앞에 섰던 피사체가 저만치 물러나며 나와 피사체 사이에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공간을 도드라지게 한다. 작은 카메라를 쓰는 것도 처음이고 광각을 주로 구사하는 것도 처음이라서 카메라는 손에 잘 안 익는다. 작은 새 카메라가 내 손에 익숙해지고 28mm 화각이 눈에 익는데는 제법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낯선 것과 만나서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긍정해야 한다. 부대끼는 어색함과 불편함도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맞아갈 것을 알고, 그 곳까지 가는 시간의 길이도 자연스러운 것을 알겠다. 다만 익숙하던 것이 멀어지는 데 걸릴 더 긴 시간도 함께 긍정할 수 있기를 빈다.



지난 일주일은 내내 비 내렸다. 토요일 낮 동안 잠시 맑고 다시 비다.

다음주 일기예보도 일주일 내내 비다.

하늘이 테러한다.

2009년 2월 20일 금요일




내가 사는 집 씽크대. 한 끼 식사에 그릇은 하나씩. 더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설거지 미루기.


요 며칠은 하는 일 없이 논다. 논다.기 보다는 빈둥거린다. 노는 것만도 못 하다. 여기 저기 사이트나 뒤적거리고 다른 사람들 블로그나 둘러 다닌다. 지나간 쇼프로그램도 보고 책도 몇 장 뒤적거린다.

베토벤바이러스.드라마를 대충 돌려가며 다시 봤다. 대사 중에,
"버나드 쇼가 죽을 때 이런 말을 했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뜨끔.했다.

돈 버는 일이 많이 없다고 기죽어서 늘어져 있지 말아야겠다. 돈 버는 일이 많이 없으면 그 만큼 시간이 남고, 그 시간에 돈 안 버는 일이라도 하면 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오늘을 후회하게 된다면, 돈을 못 벌어서 후회되는 시간이 아니라 채우지 못하고 빈둥거리며 성글게 보내버린 시간이기 때문일 테다. 좀 더 바지런하게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사고도 쳐서 풍성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글도 부지런히 쓰고 사진도 신나게 찍어야 한다. 우물쭈물하면서 보내면 안 된다.

낙서처럼 적어두는 걸 보니 이 글은 며칠 지나서 지우겠구나.

왜 쓰나?

2009년 2월 19일 목요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진행형일 겁니다. 한 사람 보고 느끼는 호감부터 시작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서먹하고 다시 화해하고 또 사랑하고 나중에 헤어지고 헤어진 다음에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그러다가 잊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나는 것까지. 그 시간들을 빼고 나면 깨어있는 시간이 참 짧을 것 같습니다.

2009년 2월 18일 수요일

용왕산

강의 시작, 그 곳에 산이 있다.






운무가 많은 날에 호수는 넓어서 다만 아득하다. 가장자리를 치는 물결은 조용해서 이 물들은 어디로도 갈 마음이 없어 보인다. 흘러서 강이 되고 다다라서 바다가 된다는 사실은, 호수의 보이지 않는 저 편에 땅이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단지 배워서 아는 것이다. 눈은 강의 반대편에 닿지 못 하고, 의식은 바다에 닿는 강을 쫓아가지 못 한다. 디엔산호淀山湖. 황푸강黄浦江의 발원지로 알려졌던 곳이다. 호수의 바닥에서부터 솟아난 것이 아니라면, 이 물도 어디선가 왔을 것이다. 호수에서 강으로 흘러 드는 물줄기를 확인한 자전거는 호수로 흘러 드는 물줄기의 꼬리를 잡아며 나아간다. 호수의 서편 끝에서 상하이의 행정구역은 끝나고 있다.

강의 시작을 찾아가겠다는 발상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어디든 가야 했고, 강의 시작은 그럴듯한 목적지처럼 보였다. 그곳에 가면 만능열쇠 같은 답이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문제라도 다 풀어낼 수 있는 답이, 강이 시작하는 거기라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3일 동안의 여행은 그렇게 출발한다.

1일차

지난 밤까지 비가 내렸다. 비 내리고 추운 날씨 눈치 보느라 자전거는 준비가 끝난 상태로 1주일을 기다렸다. 비는 새벽에 그쳤다. 이제 며칠은 맑을 것이다. 집 나선 자전거는 상하이의 남서쪽 끝으로 뻗은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서산佘山역까지 가야 한다. 오늘 기온은 4도에서 11도. 시의 바깥쪽으로 나가는 새벽 지하철에는 사람이 없다. 몇 정거장 가도록 타는 사람은 없고 반대편에 서서 시내로 들어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만 보인다. 가져온 시집 한 권은 쉽게 보아지지 않는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자전거가 꾸벅꾸벅 존다.


8시에 서산역을 출발한 자전거는 얼마 안 가서 주자자오朱家角를 지난다. 상하이 주변 여섯 곳 옛 운하마을 중에 시내와 가장 가까운 곳.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은 아직 오지 않고, 관광객을 맞기 위한 준비가 조용한 가운데 단단하다. 자전거는 골목길 돌아다니며 기꺼이 길을 잃고 한동안 놀았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첫 목적지 디엔산호. 자료에 따르면 상하이 행정구역의 서쪽 끝에 있는 이 호수가 예전에는 황푸강의 발원지로 알려졌었다고 한다. 인공수로처럼 보이는 쭉 뻗은 물길을 흘러서 디엔산호의 물은 황푸강이 된다. 이후에 디엔산호보다 더 서편에 있는 타이호太湖가 발원지일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 한 학자의 연구와 답사에 의해 마침내 절강성 안지현安吉의 롱왕산龙王山 계곡이 진짜 발원지로 밝혀진다. 자전거는 디엔산호와 타이호를 거쳐 산 속으로 갈 작정이다.



호수의 한 편에 자전거를 눕히고 쉰다. 가장자리를 치는 물결 소리가 편안하다. 자전거를 타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 중에 하나는 자전거의 질주본능이다. 달리는 연습만큼 멈추는 연습도 필요하다. 자전거는 올라타면 자꾸 달리려고 해서 마음 속에 정한 목적지 전에는 쉬이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저녁까지 달리고 돌아보면 내가 지나온 길은 보이지 않고 지친 몸만 보인다.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다. 어서 가려는 자전거를 잡아 채며 오늘 여행은 가다 서다를 반복할 것이다.



상하이에서 후조우湖州까지 이어진 318번 국도를 따라 달리던 자전거는 태호를 보기 위해 방향을 비튼다. 이제부터는 230번 성도다. 길 주변은 작은 호수들 천지다. 중국 남방 지역에 통일왕조가 성립되기 어려웠던 것은 늪지가 많았기 때문이라던 학부 시절 강의 내용이 떠오른다. 사방 펼친 호수와 수로에서 배는 오가고 소리도 없는 풍경 속에서 어부는 그물을 당긴다. 풍경은 날 때부터 거리를 내재한 단어다. 풍경을 인식하는 것은 나와 장면 사이의 거리를 느끼는 것이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갔을 때 풍경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닐 것이다. 안개 속에서 느리고 고요하게 그물을 끌어올리는 저 장면 속에 나는 영영 닿지 못 할 것이다.

태호의 남동쪽 끝부분에서 보는 호수는 너무 커서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없다. 지도를 펼쳐서 내가 있는 자리와 호수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대충의 크기가 나오는데 그 대충의 크기라는 것이 ‘가도가도 끝 없는’ 정도의 크기다. 관념의 크기를 몸의 가까운 곳으로 끌어들여 보려는 시도는 엄두도 못 낸다. 물가에 앉아서 오는 길에 산 사과 하나를 깎아 먹는 것이 타이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고작이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보기나 한 것일까?

겨울 해는 짧다. 느릿느릿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자꾸만 기우는 해와 오늘 저녁 숙소까지의 거리를 번갈아 보고 생각하니 머뭇거릴 틈이 없다. 다시 318번 국도, 점심 거른 속이 걱정되지만 조금씩 등장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열심히 달려가야 한다. 이쯤 되면 허벅지는 뿔나서 말을 안 듣고 엉덩이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하늘이 짙은 남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려는 무렵에 후조우 시내에 도착했다. 위험요소가 많은 야간 라이딩을 피하기 위해 두어 시간 힘껏 오니 속은 울렁거리고 다리는 풀려서 서 있기 힘들다.

낯선 도시의 낯선 것들이 주는 기대감도 느낄 여유가 없다. 몸이 지치면 익숙한 것에 안주한다. 숙소는 MOTEL168, 저녁은 맥도널드. 나도 이러는 내가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할 수만 있으면 한 입에 음식들을 털어 넣고 숙소로 돌아가 뜨거운 물에 몸 담그면 좋겠다. 아, 이 숙소에는 욕조가 없구나. 내일은 더 짧은 길을 더 힘들게 가야 할 것이다. 목적지 산의 고도가 1500m 이상, 그리고 현재 고도라고 해야 고작 200m 남짓일까? 마주치게 될 경사를 생각하면 내일이 한 일주일쯤 뒤에나 오면 좋겠다.

주행거리 147km / 페달 구른 시간 7:41



2일차

날이 밝기를 기다려 자전거는 출발한다.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서 이튿날과 삼 일째 되는 날의 여행이 가장 힘들다. 몸이 자전거에 익숙해지기 전이고, 첫 날의 피로가 쌓인 다음이기 때문이다. 시내를 벗어난 도로는 아침 안개로 덮여있고, 그 뒤로 흐린 산들의 윤곽이 겹쳐 있다. 오늘 하루 내가 만날 길들의 경사를 알겠다. 뿔난 엉덩이를 달래가며 안장에 얹고, 자전거는 104번 성도省道를 따라 간다.





후조우를 떠난 지 네 시간. 안지현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한 황푸강디이피아오黄浦江第一漂 표지판. 예상보다 많이 가깝다. 이대로 간다면 점심 무렵에는 도착할 수 있고, 오늘 중으로 상하이행 저녁 차를 탈 수도 있다. 먹은 것 없는 몸에 힘이 돈다. 226km. 하루 반을 달려왔다. 황포강의 시작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도착한 곳은 황푸강디이피아오. 느낌이 어색하다. 정오의 햇살이 따뜻하고 아무도 없는 주변은 고요하다. 바람만 가끔 옅게 불고 놀란 물새가 두어 마리 수면을 친다. 근원이라는 단어가 갖는 신비감의 정체는 여기에 무엇도 없다. 어찌된 일일까? 쇠락한 놀이동산 느낌이다. 입구 매표소는 겨우 문 닫았고 주차장은 비었다. 주변 몇 곳의 식당도 겨우 문만 열어두고 있다. 정말 여기인가? 안내문에는 이 곳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가량 내려 간다고 쓰여 있고 뱃삯 80원이라고 적혀 있다. 아, 뱃놀이 하는 곳이었나? 배들은 모두 뭍으로 끌어올려져서 비닐 장막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 있었을 때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에 간 적이 있었다. 낙동강은 태백시의 한 가운데 있는 황지연못에서 발원하고 한강은 그 곳에서 10km쯤 떨어진 산 속 검룡소에서 발원한다. 맑고 차가운 물이 땅 속에서 솟아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10년쯤 지난 그 장면을 꼭 같이 기대하며 온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발원지의 기억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여기까지 오는 내내 그 장면이 머리에 남았다. 여기는 아닌 모양이다. 썩어 고인 물의 위쪽은 여전히 흐르고 있어서, 저 위 어디에서 이 강의 이름은 출발하고 있노라고 말한다. 아마 들었던 대로 롱왕산 어디쯤에서 물은 솟아나고 있을 것이다. 됐다. 탐사가가 될 생각은 없다.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다.

여행의 끝을 다짐했지만 아쉬운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왔는데 겨우 이것이었나 싶은 마음을 다독여야겠다. 옆 식당에 들어가 별 기대도 없이 묻는다.
“여기가 정말 황포강의 시작인가요?”
“아, 거기? 여기서 저 길 따라서 40km쯤 더 가야 해요.”
“40km요? 음, 거긴 확실히 표지판이 있긴 한가요?”

역시나 여긴 아니었구나. 그리고 역시나 분명히 다른 곳에 있었구나. 아직 먼 목적지와 따듯한 집 사이를 방황하던 자전거는 다시 마을 길로 접어든다. 이미 한참 전에 성도에서 빠져 나온 덕분에 작은 길은 중앙선도 없고 자잘한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한다. 이 길을 따라 40km를 가야 한다. 이미 오후도 한참이다. 산 속의 해가 빨리 지는 것을 감안하면 또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안지현은 대나무 가공공업이 활발한 도시인 모양이다. 곳곳에 대나무를 재료로 하는 가구공장이 있고 온통 대나무로 가득 찬 산들이 겹쳐 있다.

마침내 보이는 진짜 발원지 이정표들. 산 아래 온 것을 알리듯 완만하지만 끝 없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목적지까지 25km. 순도 높은 25km짜리 오르막을 준비했다는 뜻. 아마 그럴 것이라고 알면서도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고 일말의 기대를 가졌지만 결국 눈 앞에 나타나버린 급격한 언덕이다.




오후 네 시. 마지막 계곡을 지나서 입구에 도착했다. 상하이에서 266km 떨어진 곳이다. 아래 민박집에서는 30분이 걸린다고 했으니 입구를 지나면 곧장일 것이다. 이 풍성한 물이 솟아나는 장면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발원지라고 했으니 아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발원지는 계곡 속에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마땅히 둘 곳이 안 보인다. 이미 날이 늦었으니 아래 민박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걸어서 발원지를 보러 가기로 한다. 이 작은 결정이 가져올 사태를 이 때는 몰랐다.
비수기여서일까? 계곡 곳곳에 있는 민박집들은 손님이 없다. 방을 잡고 자전거를 방 안에 옮긴 다음 민박집 식구들과 함께 놀고 그들의 식탁에 숟가락 하나만 얹어서 함께 저녁을 먹는다. 내일이면, 강의 시작을 본다.

누적 주행거리 247km


3일차

가난한 여행자는 입장료를 피하기 위해 새벽 길에 나선다. 휴대용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까만 산길을 1km쯤 걸으면 입구가 나오고 그 곳에서부터 이정표를 따라가면 황푸강의 발원지에 닿을 수 있다. 30분이면 된다고 했다. 분명히. 30분 걸으니까 작은 폭포가 보인다. 작은 크기에 비해 내리쏟는 물줄기는 제법 거세다. 잠시 감상하고 사진 찍고 다시 상류로 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바로 아래까지 보이던 ‘황푸강위엔토우黄浦江源头’라는 표지판이 안 보인다. 어찌된 것일까? 뭐 상관 없다. 물은 아직도 거세게 흘러내려 오고 있으니 저 위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샘솟는 물의 근원 말이다.

1시간쯤 걸었을까? 관광객을 배려하던 길은 이미 사라졌다. 이건 분명한 등산로다. 오로지 등산객을 위한 길이다. 그래도 아직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는 거세다. 더 가 보자. 1시간 30분, 2시간. 이 길이 맞는 것일까? 이러다가 산 꼭대기 가지 않을까? 단지 옆에 흐르는 물소리에 의지하며 저 흘러내려오는 물 끝에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간다. 물줄기는 상류가 가면서 몇 줄기로 갈라졌다. 등산로는 어떤 물줄기를 포기하면서, 어떤 물줄기와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산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캔 죽 하나 겨우 먹고 물병도 없이 아무 장비도 없이 나선 길이 점점 막막해진다. 허기는 이미 경계를 넘었다. 중간 중간 계곡 물 몇 모금으로 달래보아도 소용이 없다.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이건 뭔가 잘 못 됐다. 1567m 산 정상이 눈 앞에 있다. 더 가다간 쓰러진다. 물 소리는 이제 한 곳에서 들리지 않고 사방으로 갈라져서 내려온다. 여기까지다. 내려 가자. 30분이면 된다던 길을 세 시간 가까이 올라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길이다. 허기진 몸으로 구르듯 내려가서 마지막 표지판을 보았던 곳에 선다. 다시 보이는 작은 폭포. 아,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글씨. 황푸강위엔黄浦江源! 황푸강의 발원지라는 표지는 실재하는 한 점이 아니라 상징적인 표지였다. 물이 흘러내려오고 있으니 당연히 저 위 어디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던 불찰이다.





저기였었나? 입장료 아끼겠다고 너무 어두운 새벽에 왔다. 그래서 미처 글씨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등산의 무모함이란. 모든 강이 샘에서 발원한다는 작은 생각이 나를 산 속 어딘가 있지도 않는 샘으로 몰았다. 황푸강은 산의 온몸에서 발원하고 있다. 올라가면서 이미 수 많은 물줄기를 확인하고도 믿지 못 했던 어리석음을 탓해보지만 이미 시간은 흘렀고 몸은 지쳤다. 발원지를 확인하고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떠나려는 계획도 이미 늦었다.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강은 한 점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구나. 롱왕산의 여기저기가 강의 발원이고 태호와 디엔산호가 모두 황푸강의 발원인 것을 이제 알겠다.




이제 자전거를 타고 안지현으로 돌아가서 상하이로 가는 버스를 타면 여행은 끝난다. 항주로 가서 기차를 타려던 계획은 새벽 등산 때문에 수정해야 했다. 안지현까지 50여km를 달려 간다. 자전거를 분해해서 미리 가져온 전용가방에 넣고 상하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가져온 질문도 모호했고 얻은 답은 더욱 모호하다. 남은 질문은 다음 여행 때 다시 물어야겠다. 얼른 집으로 가서 따뜻한 밥 한 공기에 잘 익은 김치를 얹어 먹어야겠다.

황푸강을 보고 나니 괜히 장강의 시작이 궁금해진다. 아, 장강은 6300km라던데……

총 주행거리 311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