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다녀왔다. 바다의 등장은 갑작스러웠다.
한 달쯤 걸려서 이상에게 보낼 답장을 다 썼다. 이상은 편지마다에 책갈피를 넣어서 보내주었는데, 나는 게으르고 또 편지 봉투에 넣을 게 마땅찮아서 겨우 명함 한 장 넣었다. 명함이라... 이상이라면 명함을 명함 아니게 받아 줄 것을 안다. 편지 안에서, 몇 년째 아무 곳에도 하지 않던 칼 이야기를 다시 했다. 잊은 줄 알았다. 칼은 더 이상 어떤 화두도 아닌 줄 알았다. 내가 여전히 한 자루 칼에 기대어 있고 끝내 닿지 못 할 곳을 향해 계속 한 자루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내 안으로 가지런하기, 온 몸으로 낮아지기. 제법 좋은 칼을 갈아 가고 있구나 싶다.
나보다 어리지만 내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경훈이와는 어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녀석은 와이프와 함께 먹을 술국을 아마도 삥뜯어서 갖고 온 듯하다. 같이 먹자고 소주 한 병도 갖고 왔는데, 나는 겨우 물잔으로 회답했다. 아깝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나는 중고 씨디 두 장을 사고, 편의점 와인 코너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던가. 꼭 한 잔 하고 싶었는데, 혼자 먹으면 일 년을 먹을 것 같은 와인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한참 고민했다. 녀석이 그렇게 올 줄 알았다만 한 병 질러 놓을 것을. 술 한 잔이 참 고픈 날.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도 가물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존재마다의 탄생 때마다 저 끝에서 달려와 맺히고 폭발하는 우주와 우주의 맥박 같은 갈등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제법 몇 년 떠벌리기도 했었는데.
숫자로 따지면 분명하게 어린 효빈이는, 도대체 어떤 시간을 거쳐온 것인지 가끔씩 던지는 한 마디 속에 막강한 내공을 언듯 보이고는 한다. 저 나이에 저런 내공이라면 도대체 저 아이가 내 나이쯤 되면 어떤 말들을 하게 될까? 기대가 된다. 효빈이에게 들려준 협곡의 양편에 앉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 십 년은 된 것이다.
우연찮게 지난 생각의 토막들을 불러오게 되는 요즘이다. 그 때쯤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치기 어린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생각의 바탕에서 이렇게 걸어온 지금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나는, 자랐다.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감정을 다만 소비시키고 마는 문장은 배설 외에 무엇도 안 된다. 그러면서 이런 문장들이나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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