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6일 금요일

살아가는 일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버티듯 사는 하루는 힘겹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앞을 막아선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 세상을 버티며 있는 것일까? 나이 들어가는 아들의 반쪽을 걱정하는 어머니께 푸념처럼 물었던 적이 있다. 한 몸도 거추장스러운데 제 발로 걸어 어디를 가란 말인가.

"어머니, 이 험한 세상에 또 아이를 낳아서 살게 해야 되나요? 사는 건 힘든데 그냥 나 하나로 그 어려움을 그치면 안 될까요?"

"여봐, 아들. 고생이라니? 생각해 봐. 네가 살아온 날이 고생이었어? 얼마나 재밌는 일이 많았는데! 아이를 낳아서 이 험한 세상을 또 겪게 한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재미난 세상을 살게 해주겠다고 생각해야지."

아, 어머니는 위대하다. 겨우 서른 생을 살아온 아들은 찍 소리 못 하고 두 손 든다. 그래, 살아온 날들은 얼마나 빛나는 하루들이었던가. 나는 그 빛들 속에서 또 얼마나 속으로 빛나며 나를 채워 왔었나. 이 신나고 재미난 세상을 나 혼자만 누릴 것은 아니구나. 살면서 내가 배우고 느낀 재미를 내 아이에게 알려주어야겠구나.

대부분의 일들이 양면성을 갖지만, 어떤 것들은 의심할 것 없이 마냥 아름다운 것도 있다. 사랑도 그 중에 하나다. 짝사랑의 설래는 마음도 좋고, 갓 시작된 풋풋한 마음도 좋다. 가까워질 듯 여전히 그대로인 거리를 재는 긴장감도 좋고, 농익은 질척함도 좋다. 빛 바래가는 건조한 느낌도 나쁠 것 없고, 큰 자리 비어버린 뻥 뚤린 허전함도 뭐 거쳐야 할 것이다. 또래 친구들 중에 사랑에 대해 무덤덤한 녀석들을 보면 내 마음이 가빠진다. 아, 두 번 사는 세상 아닌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

삼 주째 내리던 비가 그친다. 살짝살짝 그친다. 올듯 안 올듯 비가 그치고 날듯 말듯 햇빛도 나온다. 그렇게 봄이 올 모양이다. 나는 잘 쉬었다. 깊은 잠을 자고 영화도 보고 이런 저런 생각도 했다. 몸이 부드러워지고 정신은 말끔해졌다. 새로 검도를 시작했는데 칼을 휘두르는 근육은 많이 비어 있었고, 대신 빈 속에서 소리는 야무지게 뭉쳐 나왔다. 마침 일거리도 안 들어와서 아무 긴장도 없었다. 날 개이니 하나둘 작업 연락도 온다. 일요일에는 비가 안 온다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가보아야겠다. 토요일에 있을 사진스터디는 일찍 마쳐야겠다. 일요일을 위해. 그리고 만약에 비가 오면, 멀리 친구가 보내온 편지 한 통과 답장 쓸 종이 몇 장 들고 어디 편한 자리라도 찾아 나가야겠다.

사랑하자.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