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5일 토요일

샤워하다가 불쑥 드는 생각.

사람들은 왜 '그리스인 조르바'에 열광했던 것일까? 아마 이윤기의 번역이었던 듯한데, 번역가 스스로도 자신의 번역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했고, 읽는 입장에서도 말의 맛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었던 듯한데, 번역의 문제를 떠나서, 왜 사람들은 한 명의 그리스인을 그토록 사랑했었을까?

되는대로 막 산 것 같은 인상에,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그렇게 나이 든 인물. 아마 그 대충 산 것 같은 삶을 관통하는, 사실은 단단한 어떤 삶의 고집 같은 걸 사랑한 것일까? 성인들이 보여주는 삶이 위대하기는 하나 일반인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이라면, 조르바의 삶은 나와 동시대를 호흡하고 바로 옆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도달한 어떤 경지였기 때문 아닐까? 뭐 어쩌면 쉽게 닿을 수 있겠다는 친근감이었을까? 작은 일에 감동하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고, 어떤 계산도 없이 좋아하는 대상을 마음껏 사랑하고, 자신의 가치와 본질을 스스로 잘 알고, 삶 앞에 한 치 주저함도 없이 당당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성인들의 삶이 모든 유혹을 끊어내고 스스로를 가두는 과정을 통해 완성에 도달한다면, 조르바는 삶 속의 모든 유혹과 화해하면서 마침내 이루어낸 경지에 닿았기 때문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조르바의 죽음은, 성인의 죽음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침대에서 일어나 힘찬 발걸음으로 창문가로 가서 호탕하게 웃고는 그 자세로 죽었다지 않나. 그 웃음은 마치 '다 이루었노라' 내지는 '한 세상 잘 살았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사실 이 아침 가장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샤워기 밑에 서서 왜 갑자기 조르바가 생각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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