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1일 수요일




# 1

새벽에 버스는 아직 오지 않을 모양이다. 첫 버스를 기다리는데 풀숲에서 고양이가 운다. 작고 불안한 소리로 운다. 쪼그리고 앉아서 부르니까 회색털 고양이가 온다. 사람 손에 길러졌던 모양이다. 주저주저하다가 와서는 내 주변을 돌면서 몸을 비빈다. 아직 새끼다. 만져보니 목줄도 있다. 아, 사람 집에서 살았었구나. 어떻게 할까 하다가 목줄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만져보는데 어떤 방식으로 잠긴 것인지 잘 안 풀린다. 고양이는 장난치는 줄 알고 손가락을 깨물고 무릎 위로 올라와 배를 보이며 눕는다. 발톱 때문에 바지 여기저기가 상처난다. 안 된다. 이 놈아.

가만 보니 풀숲에 노란, 조금 덩치가 큰 녀석이 하나 더 있다. 이 녀석은 제법 사람을 경계하고 다가오지 않는다. 회색 새끼 고양이가 노란색 고양이를 따른다. 집 나와서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 그런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새끼 고양이는 노란색 고양이와 나 사이를 오고 가며 바쁘다. 고양이가 울면 풀숲 안으로 들어갔다가, 내가 손짓하고 부르면 무릎으로 올라온다.

버스 오는지 보는 사이에 노란색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이리 오라고 부르니 새끼 고양이는 몇 번 뒤돌아보며 멈칫거리다가 이내 노란 고양이를 따라 갔다. 갈등 끝의 결심 같은 걸 본 것 같다. 좋은 길잡이를 만난 고양이가 잘 살기를 빈다. 아, 끊어주지 못한 목줄이 아쉽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택시비가 아깝지만 어쩔 수 있나. 새벽 택시는 빠르다. 새벽 고가를 달리는 쾌감으로, 택시는 한 낮의 갈증을 달랠 모양이다.










# 2, # 3

난징루를 따라 끝까지 가면 그 곳에서 지하도를 통해 와이탄 강변에 갈 수 있다. 고흐의 그림들이 잔뜩 걸려있는 지하통로는 아마 그 옆에 있는 네덜란드 은행에서 돈을 댄 모양이다. 여기 지하도를 지나며 여기 그림들을 볼 때마다 이 그림들을 촬영한 사진가가 궁금해진다. 사진들은 고흐의 붓질을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일반적인 그림 촬영 조명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전체 밝기를 유지하는 동시에 측면에서 강한 하이라이트 광원을 써서 고흐의 붓질은 사진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실력있는 사진가의 잘 찍은 사진이다. 김훈의 문장이 그런 것처럼, 고흐의 붓질은 그의 숨을 갉아서 캔버스에 뿌려둔 것같다. 그래서 마침내 더 갉아낼 숨이 없을 때, 고흐는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고흐의 그림같은 사진을 찍겠다고 벼른 게 몇 년인데, 게으른 사진가는 그럴 능력도, 용기도 없다. 나는 길게 살고 싶다.













# 4, # 5, #6

공사현장은 일찍부터 움직인다. 벌판에 높이를 쌓고 또 허물고 다시 쌓는 일은 도시에서 익숙한 풍경인데, 상하이는 그 익숙한 것이 너무 많아서 마치 상하이의 특징적인 모습인 듯하다. 초봄 아침에 바람은 아직 거세고 기온은 찬데, 노동자들의 작업복과 헬맷은 어찌나 원색으로 찬란들 하신지.








28mm 화각은 마음에 든다. 사진은 시원하고 통쾌하다. 그래도 자꾸만 비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5mm의 화각은 어려웠지만 비장했었다는 감상같은 것. 그래도 28mm를 계속 써야겠다. 쉽고 경쾌한 화각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