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30일 월요일

"그 때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서 말싸움을 하면 아마 그 때 내가 이길 거야. 그 때는 내가 좀 셋잖어. 뭐, 지금의 나는 웃지 않을까? 그러면서 생각하겠지. 아, 저 녀석이 방향을 잘 잡아서 잘 커야 할 텐데."

"요즘은 생각해. 오직 모를 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 같고, 정말로 진심으로 모르는 거. 그렇게 되는 생각을 해. 낮아지겠다는 다짐은 역시 아는데 모르는 척 하겠다는 뜻 같고, 정말로 내가 처음부터 가장 낮은 곳에 있었던 것처럼."

메신저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혜와 나눈 대화들. 처음 만난 것이 봄날의 학교 도서관 앞. 잎이 파랬고 바람이 따뜻했다.
"오빠는 생각 없이 지내서 참 좋겠어요." 지혜가 내게 건넨 첫 마디. 요즘에도 우리가 만나면 꺼내놓고 웃는 이야기. 내가 생각이 없나?

장비 잔뜩 지고 출장갈 때면, 서류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비행기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이면 저런 단촐한 모습으로 길을 떠나볼까 했다. 한국 오고 갈 때 짐 부풀리는 걸 지독하게 피하려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인 듯싶다. 출장을 빙자해서 놀고 쉬러 간다. 바닷가로 간다. 이번에는 카메라 장비 하나도 없다. 똑딱이 카메라 하나만 챙겼다. 노트북도 안 가져 간다. 이메일은 미리 자동답장 기능으로 설정해 두었다. 초대해 주는 사람 체면도 있는 거니까, 깔끔하게 입을 흰 셔츠 두 장, 그리고 이번 여름에 입으려고 사 둔 등산용 반바지, 책 한 권과 원고 뭉치. 맞다, 수영복. 쉬엄쉬엄 느리게 느리게 나른하게 햇볕에 널린 빨래마냥 널부러져 있다가 오려고 한다. 새벽에는 바다로 가고 저녁에는 수영장으로 가면서 물 속에 떠다니다가 와야겠다. 심심하면 책 읽고, 엽서도 쓰고, 또 원고도 써야겠다. 어쨌든 빨리 책이 되어 나와야 하는 거니까.

속도나 방향의 전환.같은 것.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바라는 것들. 눈 앞에 닥친 여러 상황에 대한 시원한 답들이, 널부러진 빨래 위로 내려와 앉아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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