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2일 목요일

봄처녀 제 오시네






새벽 자전거는 들릴 듯 말 듯 콧노래 흥얼거리며 간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색동옷을 입으셨네.

봄과 처녀를 떼어놓을까? 아니면 봄처녀라고 붙여둘까? 떼어놓자니 두 단어의 개별성은 선명해지고 개별성의 두 단어 사이에서 생겨나는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단어 둘을 붙여서 ‘봄처녀’라고 쓰면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다. 봄은 잡스러운 기운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절이니까, 봄처녀가 좋겠다. 자전거는 어디쯤 와서 흩날리고 있을 봄처녀 색동 저고리 보러 바닷가로 간다.




봄은 떠나온 곳으로부터 온다. 대학시절 봄은 고등학교 너른 운동장을 몰아 다니는 모래바람이었고,바다 건너에서 맞는 봄은 고향 바닷가에 부는 비린내다. 봄에는 떠나온 모든 것이 그립고 봄바람은 가슴에 사무쳐서 이 계절을 지나는 일은 위태롭다. 위태로운 봄은 사태처럼 올 것이다. 한 번 두 번 신호를 보내다가 한 순간 와락, 덮쳐 올 것을 안다. 봄에 그리움은 꽃처럼 핀다. 아침 일곱 시 반, 집을 나선 자전거는 수주허를 따라 와이탄으로 가서 황포강을 건너는 배에 오른다. 주말 아침이라서 출근시간인데도 배는 제법 널널해 보인다. 자전거가 강을 건너가는 비용은 1.3원.








푸동으로 건너온 후 지도는 당분간 보지 않기로 한다. 저 동편 끝에는 너른 바다가 있다. 나침반 하나만 보며 가는 길, 개별 길들은 이름을 잃었다. 다만 방향성만 있는 길 위에서 자전거는 봄맞이 산책을 간다. 속도계도 보지 않기로 한다. 겨울용 자전거 복장도 벗어 던지고 가볍게 입고 나선 길, 지도를 포기한 자전거 앞에 지도에 나오지 않는 좁은 골목이며 흙길이 나와서 당황스러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준다.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간단한 음료수와 쵸코바 하나로 허기를 달랜다.












골목길과 번듯한 차도를 번갈아가며 네 시간을 달려서 자전거는 바닷가에 닿는다. 三甲港산지아강. 마음 속 목적지로 두었던 곳이다. 몇 년 전에 버스를 타고 왔던 곳인데, 특별히 볼 것이라고는 없는 누런 바다라는 기억만 있다. 그 ‘별 볼 것은 없는 것’이 보고 싶어질 줄 몰랐다. 살아가며 보면 그런 때도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하고, 한참이 지나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했고,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보았었구나 싶은 기억의 흔적만 남는 때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다만 보지 않으며 지나온 것들이었다. 무서워서 피하고 피했다는 사실이 다시 무서워져서 감추고 만다. 보이는 것들이 보이는 대로는 아닐 것이다. 산만큼 커 보이는 화물선도 수평선 끝으로 멀어져 가면 점으로 보일 듯하고, 저 끝에 한 점도 눈 앞까지 오면 태산만큼 클 듯하다. 도대체 모를 길 위에서 자전거는 방향을 잃고 다만 가는 것인데, 여정이 길어지면 자전거의 길은 결국 사람의 안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자전거 여행자들의 목적지는 결국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그 어디쯤이다.





이른 봄빛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바닷가 둑에 누워 낮잠도 잔다. 바닷가의 낮잠은 깊지 않아서 바람과 소리가 옅은 잠 속으로 들어온다. 멀리에서 지나가는 큰 배는 느리고 낮은 울음소리를 낸다. 항구에 정박하기를 기다리는 화물선들이 바다 가운데 떠 있다. 봄도 저기 어디쯤에 떠서 곧 이 땅에 닿을 것이다. 바다는 그 가운데 뜬 배와 그 앞을 지나는 작은 배와 물의 끝에서 그 배들을 바라보는 사람까지 모두 담아서 다만 넓고 깊어 보인다.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앉아서 마주보지 않고 멀리 먼 곳을 함께 본다. 그 자세로 오래들 있는다.







쓰고 있던 고글을 벗으니 부신 하늘이 푸른 것을 알겠다. 오늘 하늘이 파랗다. 깊게 푸른 것이 아니고 성글게 푸르다. 순수하고 고집스럽게 푸른 것이 아니고 온갖 것들 오는대로 모두 받아준 푸른색이다. 그래서 저 빛깔 하늘 속에는 온갖 것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향 뒷산에 지천으로 핀 봄나물 같은 하늘이다.





길게 한숨 자고 통과의례처럼 사발면 하나 먹고 난삽하게 가지 친 감정들을 쳐낸다. 바닷가의 감정들을 그대로 끌고 도시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먼지가 곱게 앉은 버스 종점의 편의점에는 사발면 먹는 동안 버스가 안 들어 오기를 빌어야 한다. 아, 라면은 다 익었고 저기 버스 온다. 흙먼지를 날리며.

아침에 탔던 배를 다 저녁에 타고 되돌아 간다. 시내로 들어오며 자전거는 다시 생활들 속으로 들어왔다. 채소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는 자전거들과 오토바이들 속으로 자전거는 간다. 오전에 맑던 하늘이 흐려진다.


바퀴 구른 거리 9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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