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7일 월요일

베이스가 좋아진다. 요요마의 첼로 정도에서 느끼던 호감은 게리 카의 베이스 연주쯤으로 더 내려갔다. 저음은 고음보다 층간 소음이 잘 전해진다. 아파트에서 듣기에는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밤에 듣는 베이스 음악은 심장에 바로 닿아서 심장박동이 음에 반응한다. 아랫집 윗집에 조금 미안하지만.

악기 하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건 맘처럼 쉬운 게 아니다.

때가 되어서 악기를 배우게 될 때, 콘트라베이스나 안 되면 더블 베이스라도 배워야겠다. 더블 베이스보다 좀 더 큰게 콘트라베이스인가? 단지 그 차인가? 더 크면 음이 더 낮은가? 뭐 어쨌든, 악기는 정한 셈이다. 활로 켜는 것보다는 손가락으로 튕기는 게 더 나을 듯. 도구를 하나라도 덜 쓰니 다루기에 더 쉽지 않을까?

가족 재즈밴드라도 만들어야지. 근데, 온 가족이 다 베이스를 좋아하면 어쩌지?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샤워하다가 불쑥 드는 생각.

사람들은 왜 '그리스인 조르바'에 열광했던 것일까? 아마 이윤기의 번역이었던 듯한데, 번역가 스스로도 자신의 번역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했고, 읽는 입장에서도 말의 맛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었던 듯한데, 번역의 문제를 떠나서, 왜 사람들은 한 명의 그리스인을 그토록 사랑했었을까?

되는대로 막 산 것 같은 인상에,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그렇게 나이 든 인물. 아마 그 대충 산 것 같은 삶을 관통하는, 사실은 단단한 어떤 삶의 고집 같은 걸 사랑한 것일까? 성인들이 보여주는 삶이 위대하기는 하나 일반인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이라면, 조르바의 삶은 나와 동시대를 호흡하고 바로 옆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도달한 어떤 경지였기 때문 아닐까? 뭐 어쩌면 쉽게 닿을 수 있겠다는 친근감이었을까? 작은 일에 감동하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고, 어떤 계산도 없이 좋아하는 대상을 마음껏 사랑하고, 자신의 가치와 본질을 스스로 잘 알고, 삶 앞에 한 치 주저함도 없이 당당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성인들의 삶이 모든 유혹을 끊어내고 스스로를 가두는 과정을 통해 완성에 도달한다면, 조르바는 삶 속의 모든 유혹과 화해하면서 마침내 이루어낸 경지에 닿았기 때문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조르바의 죽음은, 성인의 죽음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침대에서 일어나 힘찬 발걸음으로 창문가로 가서 호탕하게 웃고는 그 자세로 죽었다지 않나. 그 웃음은 마치 '다 이루었노라' 내지는 '한 세상 잘 살았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사실 이 아침 가장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샤워기 밑에 서서 왜 갑자기 조르바가 생각난 것일까?

2009년 4월 23일 목요일

유난히 시계視界가 좋은 날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저녁이 그렇다. 창 밖은 마침 어두워지는 중이었는데, 아주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작은 베란다를 실내로 끌어들여 놓은 내 방의 창문은 서쪽을 향해 둥글게 나있는데, 서쪽으로는 아파트 단지와 그 너머 낮은 건물들의 꼭대기가 이어져서 지상과 하늘의 경계를 만든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멀리 중산공원에 있는 롱즈멍 호텔의 야간조명이 보인다. 이렇게 시계가 좋은 날은 한 달에 잘 해야 한 번 정도 밖에 없다. 이런 날은 건물의 외관을 찍기에 좋은 날이다. 뿌연 날씨에 찍고 이 만하면 됐다고 자위하며 돌아선 건물들이 미련처럼 남아서 떠오른다. 마침 대기는 건조하고 하늘은 흐리고 낮아서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되었다. 이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면, 그래서 저 하늘 너머에서 곧 태풍이라도 올 것 같은 날씨였다면 내 마음은 미리 날았겠다.

퇴고를 시작한 원고는 진도가 잘 안 나간다. 문장을 마련하지 못 한 기억을 내용만으로 엮으려니까 그렇다. 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문장은 빠질 것이 없지만 내 기억력은 선택과 생략에 능하다. 그래서 닥친 상황에 대한 문장은 참 좋은 것을 알겠는데, 지나간 일에 대해 기억해 쓰려고 하면 문장은 맛도 안 나고 꼭 필요한 요점 외에 주변 상황들의 많은 부분을 생략해 버려서 쓰고 돌아본 문장은 문장이라고 부르기 부끄럽다. 내 다음 책은 아마 길에서 쓰게 될 것이다. 기억이 지나간 일들을 선택하고 선택받지 못한 이야기들을 지워버리기 전에, 싱싱한 비린내 나는 문장들을 묶어 내는 책이 될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월드비전에 후원신청을 한 것이 한 달 가까웠는데, 오늘에야 이메일을 통해 내가 후원할 아이에 관한 내용을 받았다. 아마 신청할 때 쓴 한국 주소로 우편물로 발송되었던 모양이다. 이메일을 통해 정보를 받겠다는 문의 메일을 보내니 이제야 보내준다. 내가 도울 아이는 말리.에 사는 토고.라는 이름을 가진 일곱 살 남자 아이다. 말리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 피부색이 검고, 눈이 크다. 사진 좀 잘 찍지 그랬나. 흙벽 앞에 세우고서, "자, 사진 찍자. 예쁘게 찍어야 사람들이 널 도와줄 거야. 말 잘 들어야지."하며 카메라가 폭력을 휘두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이는 겁에 질려서, 팔려나가는 짐승의 눈빛으로, 자신이 받는 도움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사진 속에 있다. 때묻은 푸른색 티셔츠를 입었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쓰여 있고, 남자 형제 네 명에 보통의 건강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보다 윗줄에 아동 번호.라는 제목으로 이 아이는 몇 개의 숫자로 그 존재를 대신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얼마의 돈이 네 삶을 구하지는 못 할 듯한데. 내가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고 해야 네가 그 뜻을 받아들이기도 아직 어린데. 힘 앞에 주눅 든 네 표정 앞에 나는 주눅 든다. 어쨌든, 한 아이의 눈빛 덕분에 나는 열심히 제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서로 돕고 살자. 나도 힘이 들 때는, 버텨야 할 이유를 생각하마. 부족한 내가 기꺼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마. 나라도 세상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는 의지가 되니 그래도 사는 것이 낫다고 믿으마.

유난히 정신이 맑은 밤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밤이 그렇다. 어제 늦게 잠든 덕분에 아침에는 늦잠을 잤고, 덕분에 요 며칠 새벽마다 하던 원고 퇴고를 오늘은 못 했다. 한 번 엉킨 일과는 계속 이어졌는데, 마침 별다른 일정도 할 일도 없었던 하루는 무료하게 갔다. 인터넷으로 영화도 보고 한국 쇼도 보면서 밝은 날을 보냈다. 며칠 분주하고 단단하게 살았던 뿌듯함으로 오늘 하루의 나태함 정도는 덮어도 좋은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이렇게 정신이 맑으니까, 오늘은 편지라도 써야 하나. 어제 혜림이가 보내준 히긴즈 트리오라는 재즈밴드의 음악을 씨디로 구워놓고 아직 듣지 않았는데, 아랫집 윗집에게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다 늦은 밤에라도 들어 보아야겠다. 부탁받은 승우 형 렌즈도 얼른 팔아줘야겠고, 허락의 전화를 해 준 승민씨 강의도 짜 보아야겠다.

조금 더 경쾌하게, 리듬을 타며 걷자. 다시 못 올 봄이지 않나.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1-2






시간은 빨리 흘렀다. 1년 반을 예상하고 온 길이었다. 1년의 교환학생 과정을 보내야 했고, 그 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중국어 실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 학기 먼저 와서 따로 어학연수 과정을 듣기로 했다. 시간의 끝이 정해지면 남은 시간의 크기가 작아 보인다. 이 넓은 땅을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배워가기에 일 년 육 개월의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어학반의 수업은 오전과 오후 수업이 하루씩 번갈아 있어서 하루 중의 반나절은 마땅히 할 것이 없었고 학교 바깥은 끝 간 데를 모를 신천지였다. 카메라 한 대와 지도 한 장, 나침반 하나를 챙겨서 틈 날 때마다 도시를 채집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도시는 거대했다. 지도 속에는 도시를 관통하는 강과 길이 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지도 속의 점들을 잇고 있다. 그 연결은 가늘어서 아슬아슬해 보였다. 2차원의 평면 속에 면적과 위치만으로 존재하는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직접 가 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학교가 있던 곳은 새롭게 도심권이 형성되는 쉬자후이 지역이었고, 그 곳에서 화하이루를 따라 버스를 타면 온갖 백화점들이 늘어선 길을 지나 상하이의 몇 안 되는 전근대 건축물 예원의 서쪽 끝에서 버스는 멈춘다. 골동품 시장과 귀뚜라미 시장을 지나고 남방 정원의 흔적을 본 후에는 더 동쪽으로 걸어서 황포강의 야경이 유명한 와이탄에 닿거나 북쪽으로 걸어서 상하이의 가장 번화한 거리 난징루로 갈 수도 있다.



이틀 썼는데, 몇 줄 안 되네. 이렇게라도 해야 얼른 수정이라도 할 듯.
시내 나갈 일이 생겨서, 볼 일들 체크하니 시간이 조금 남네? 날씨도 조금 좋네? 아하, 오랜만에 산악용품점에 가서 속옷이랑 양말 좀 살 궁리를 하니 지름신께서 또 살살 오시려는 듯.

갑자기 씨디피 살 궁리. 엠프 산 것이 1년이 가까운데, 씨디피는 아직도 승우 형이 빌려주신 디제이용 씨디피. 뭐 맘에 드는 걸로 사자면 가격은 비싸고 지갑은 비었고, 무엇보다 음질 차이도 가격만큼 안 날 것이 뻔하니까, 그냥 중고 매장에 가서 저렴하게 구하면 500원도 안 할 텐데, 난 왜 1년이나 가깝게 그걸 안 샀던 걸까?

이렇게 좋은 날씨가 며칠 더 이어진다면, 어느 날 불쑥 씨디피를 지를 것 같은 반군. 이왕이면 리모콘 달린 걸루다가.

소소한 지름이 주는 삶의 의욕이라니. 으하.
속 깊은 친구 몇 명을 가깝게 두고 있다는 것이 참 복 된 일인 것을 알겠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변한 것 중에 한 가지는 친구의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이다. 형, 누나, 동생, 선배, 후배 등으로 나누어 갈래 지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냥 친구였다고 이제 안다. 한국어의 존칭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관계를 서열화하는 단점도 있다. 몇 살 터울 정도는 그냥 친구로 좋다. 사실 나이라는 것을 따져묻는 것도 서열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에게서 특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좋은 사람들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나이를 잊고 싶은데, 대충 그렇게 사는 것도 같은데, 나 혼자 잊는다고 잊어지는 게 아니다.

때로 멘토가 되고, 때로 쉴 곳이 되고, 또 언제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는 축복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잡 다단한 문제들도 나를 아는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해 보인다. 내 밖에서 나를 나로서 보아주는 그들이 있어서 가끔 벽에 부딪칠 때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훌륭한 답을 들고 웃으면서 내게 온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나로서 오롯하게 있을 수 있는 응원이고 나다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이다.

어머니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답답해 하신다. 그 때쯤의 여인이 한 번쯤 겪는다는 주부우울증인가 싶다가도, 그 증상을 보면 안타깝기는 어쩔 수 없다. 어머니께 내 좋은 친구들같은 친구들이 단 몇 명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아버지는 젊어서 이루신 것들에 기대어 지금도 세상을 호령하며 지내신다. 이제 좀 더 낮고 부드러워지셔도 좋을 듯한데 당신 자신은 아직 그럴 뜻이 없으신 모양이다. 아버지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몇 있었다면, 그래서 그 친구의 말이라면 온 마음을 열어서 듣는 아버지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친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들에게 받은 힘으로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힘들면 가서 기대고, 또 내가 잘 자라서 그들에게 꼭 같은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 그대들이 내게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알게 해야겠다.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1-1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바람이 차다. 두어 번의 여행으로 한국보다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있는 날씨는 방심하기에 딱 좋을 만큼의 추위다. 한국의 추위가 정면으로 몰아쳐오는 것이었다면 이 곳의 추위는 바닥으로 낮게 깔려서 온다. 봄이 코앞인 것 같아서 한 낮의 느낌은 겨울을 이미 지나 보낸 듯한데 몸의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덤벼오는 추위는 스며들 듯이 온 몸을 감았다. 2월의 얇고 낮은 추위가 바다 건너 온 유학생을 처음 맞았다.
유학원에서 나온 가이드를 따라 짐짝처럼 실려 한 학기 동안 중국어를 배울 학교로 간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 해야 한 줌이 채 되지 않고, 가이드가 없다면 국제 미아 되기 딱이니 짐짝보다 나을 것도 없는 셈이다. 몇 장의 뜻 모를 종이에 이름을 쓰고 몇 권의 책을 정신 없이 받았다. 수속이 끝났다.

역할을 다한 가이드는 돌아갔다. 임시숙소로 배정 받은 방은 큰 길가에 있었다. 룸메이트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였다. 인사는 어색했다. 겨우 며칠 동안의 인연일 것을 서로 알았다. 짧게 인사하고, 룸메이트는 다른 수속을 위해 나가고, 해가 지고, 방은 넓었고, 방을 가득 채운 공기의 질감은 낯설었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 시작은 언제나 무서운 것이다. 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고,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도 없는 것이다. 상황이 내 뜻대로 움직여 준다는 보장도 없고,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작정한 목적지에 가 닿으리라는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인 것이다. 이제껏 지나온 많은 시작들을 생각하며 곧 익숙해 질 것이라고 다독여 보지만 그래도 공중에 뜬 마음은 좀처럼 낯선 땅에 내려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낯선 악기 소리가 산란한 마음을 깨웠다. 소리는 얇고 낮았다. 도로변에서 출발한 소리는 온통 비어서 막막한 공간 속으로 이른 봄 추위처럼 낮게 왔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인상적인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에 공간은 너무 낯설고 넓었고 긴 저녁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카메라를 들고 소리를 따라갔다.

맹인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차들을 등지고 앉아 얼후를 연주하고 계셨다. 중국의 전통 악기 얼후는 뱀가죽으로 덮은 울림통에 두 줄을 묶어 활로 켜서 소리를 낸다. 소리의 질감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이 십 수 년 만에 처음으로 긴 외국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제법 어울렸다. 할아버지의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한참을 들었다. 저 소리에라도 동화될 수 있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의 등 뒤로 자동차의 불빛들이 흐르듯이 가고, 할아버지와 나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갔다. 생경한 풍경이다. 사람들의 옷차림,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모습, 네온 사인 속에 들어 앉은 글씨들, 사람들이 지나며 내는 소리, 바람 속에 섞인 냄새. 무엇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손에 익은 카메라 하나만 겨우 익숙하다. 셔터를 만지작거리고 렌즈를 괜히 돌려본다. 할아버지 앞에 놓인 그릇에 동전 하나를 떨어트리고, 물었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 학교에 있는 유학생인데요.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보일 듯 말 듯,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단어로 대충 얽어낸 문장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내 질문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할아버지는 내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신 것인지, 그리고 내 요청에 대한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단지 단어의 부족함 때문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은 묘했다. 맹인이 사진에 대해 갖는 감상은 어떤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상을 포착해 액자에 담아 둔 장면은, 보이는 것과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할 그 앞에서 허락을 받는 나는 또 무엇인가? 멀찍한 곳에 떨어져 앉아서 최대한 작게 몸을 웅크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상하이, 긴 여행의 첫 사진이다.

글 쓰는 순서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2. 옥탑방 작업실에 사는 물고기

3. 예술가, 그 발칙한 이름

4. 강, 도시의 시작

5. 낡은 가을 오후의 산책

6. 상하이를 상하이답게 하기

7. 즈멍의 골목길

8. 여행, 길의 끝에서






시작합니다.

2009년 4월 18일 토요일

왼쪽 손바닥이 나갔다. 어제 운동 다녀와서 제법 큰 물집이 잡혔다. 일 때문에 밀려서 겨우 열흘 만에 운동을 갔더니 겨우 자리잡기 시작했던 손바닥 굳은살이 그 사이 풀려나고 있었던 모양이고, 지난 운동 때 깨먹은 죽도 때문에 새 죽도로 바꿨더니 손잡이 부분이 아직 거칠었던 모양이다. 이번 물집은 제법 커서, 가만 두면 다음 운동 때 더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얼른 새 살 돋으라고 물집 잡힌 부분을 걷어냈다. 쓰라린다. 샴푸할 때 내가 왼손 바닥에 샴푸를 받는다는 걸 오늘 아침에 처음 알았다. 한 손으로 머리 감고 한 손으로 로션 바르니 왼손 바닥이 막 그립다. 키보드에 손을 얹을 때도 왼손 바닥이 아랫부분에 닿는다는 걸 또 처음 알았다. 새 살이 돋고, 다시 벗겨지는 일을 두어 번 더 반복해야 손바닥은 단단하게 버텨둘 거다. 그 동안에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책 속에서, 모리 교수는 상처입은 제자에게 어서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상처의 바닥까지 내려가라고 말한다. 바닥에 닿으면 자연스럽게 바닥을 박차고 오를 수 있으니까, 애써 바둥거리지 말라고 일러 주신다. 나는 마음 급한 어린이니까, 얼른 떼어내고 새 살 돋으라고 아직 덜 아문 피부를 공기 중에 드러내고 만다. 이 정도는 버틸 만하다고 마냥 혼자 믿으면서.

아침에 인터넷에서 본 글 중에, 낙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낙타는 사람과 함께 사막을 건널 때, 힘든 내색을 잘 안 한다고 한다. 묵묵히 걷고, 든든하게 걷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때가 오면,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글은, 그런 낙타의 행위를 배신이라고 쓰고 있었다. 낙타 혼자 가는 길이었다면 그런 묵묵한 실천이 미덕이겠지만, 다른 존재와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에, 배신이라고 했다. 일방적 헌신이 미덕이 될 수 없는 관계가 동행이겠구나 싶었다. 내어줄 부분을 내어주고 받아줄 부분을 받아주는 연습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모나님은 언젠가 내게 그런 충고를 했는데, 상대방의 호의를 받아주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신세 지는 일에 서툰 반군은 밉지 않게 부탁하고 또 신세 지는 사람들 보면 그것도 참 좋은 재능인 듯해서 부럽다.

생각에 머물러 있던 일 몇 개를 진행시켜야겠다는 다짐. 더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일에 떠밀리고 쫓기기 전에, 내가 일을 몰아 가야한다는 다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애써 지우고, 가능한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한다는 자각. 그리고 아주 많이 늦기 전에, 꼭 야구장 응원을 가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엄마가 섬그늘에
乍浦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한가로운 어촌 풍경이 그려지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낮은 돌담장이 바닷가를 향해 열린 작은 집, 나무판을 끼워 만든 마룻바닥에 곱게 누운 아기를 상상한다. 그 아기에게 불어오는 바닷가 봄바람 같은 풍경들.
어촌이라는 단어를 바닷가와 동일시할 수 없는 시대에 산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의 해안선은 컨테이너 부두가 들어섰고 콘크리트로 말끔하게 마감한 부둣가에 육중한 화물선들이 정박했다. 도시의 바다에는 ‘漁’도 없고 ‘村’도 없다. 가끔, 바다의 너른 품이 아쉬울 때가 있다. 끝 간 데 없는 그 풍경 앞에서 딱히 무엇을 보겠다거나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이 없어도, 마냥 그 앞에 서고 싶은 때가 있기는 하다. 상하이 남쪽 어느 바닷가로 가면 그 곳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있고 그물도 있고 또 생선 비린내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자전거는 어촌으로 간다.
아침 지하철에 실려 송장까지 간 자전거는 곧장 남쪽으로 가서 황포강을 건넌다. 지도 상에는 강을 경계로 도로가 끊겨있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단어, ‘설마’. 도로는 강을 건너지 못 한 듯하지만 그래도 강의 양편 도로가 같은 이름으로 닿아 있으니 어쩌면 작은 다리라도 있지 않을까? 하다 못해 강 건너는 배라도 있지 않을까? 설마 없겠어? 내 자전거 말고도 제법 많은 탈 것들이 저 길의 끝으로 가는 듯한데, 설마 그 탈것들이 막다른 길을 향해 가는 거겠어? 설마 강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이야 생기겠어? 설마? 근거 없는 막연한 믿음에 기대어 자전거는 계속 가 보지만, 마음 한 구석 불안함을 속일 수는 없다. 마침내 도착한 강변, 아, 작은 부두가 보이고 익히 보던 입구가 보인다. 다행이다.





표를 끊고 배 타러 가는 길에 부두 콘크리트 위에서 버둥거리는 자라를 보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한낮의 콘크리트 위에 검은 몸으로 뒤척이고 있다. 곧 떠날 배를 앞에 둔 급한 마음은 얼른 집어서 강에 놓아주고 배에 올랐다. 배가 강의 가운데로 나아갈 때 돌아보니 다른 누군가 다시 자라를 집어서 물가에 놓아주고 있다. 다시 뭍으로 올라왔던 모양이다. 햇빛 내리는 그 바닥에서 검은 몸으로 빛 받고 있으면 온 몸이 끓어오를 텐데, 자라는 왜 그 뜨거운 바닥으로 다시 온 것일까? 어디로 가려고 했던 것일까? 전날 밤 기막힌 꿈이라도 꾼 것일까? 몇 번이나 놓여날 수 있을지 그 운이라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강을 건넌 자전거 앞으로 초록과 노란색의 바다가 펼친다. 밀인지 보리인지 알 길 없는 녹색 풀밭과 유채꽃의 밝은 노랑이 겹쳐져서 끝 간 데를 모르겠다. 초록의 냄새는 싱그럽고 노랑의 유채꽃은 여름의 풀비린내를 예비하는 알몸의 살냄새를 낮게 뿌려대고 있다.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자전거는 풀밭 가운데로 난 작은 흙길에 멈추어 선다. 혼자 헤매기 아까운 길이다. 데려와 함께 보고 싶은 사람들 얼굴이 봄풍경 위에 겹친다. 이 풍경을 혼자 독차지한다는 생각이 마냥 미안해진다.

송장에서 느릿느릿 다섯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닿았다. 발전소 지나서 한국 민박집에 숙소를 잡고 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바다를 보러 나간다. 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 들러 다음날 아침 상하이로 돌아갈 버스표를 끊었다. 상하이 남역까지는 한 시간 반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바다의 등장은 갑작스러웠다. 멀리에서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바다가 아니고, 공원의 끝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 검은 갯벌의 바다가 펼쳐진다. 눈은 검은 빛깔의 진흙을 한참 동안 밟아간 다음에야 멀리 거대한 물을 본다. 그리고 갑자기 불려 나오는 자라의 기억. 자라가 햇빛에 끓어오르는 제 몸을 부여잡고 기어 기어서 마침내 닿으려고 했던 곳이 여기는 아니었을까? 자라는, 길의 어디쯤에 있을까?





작은 만을 돌아서 골목길을 더듬어 가면 마침내 고깃배들이 묶여있고 생선 비린내가 펼친 어촌이다. 아침부터 달려온 자전거는 선창가에 눕고 더 나아갈 수 없는 여행자도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 지는 해를 본다. 굵은 밧줄에 감기고 검은 진흙에 붙들린 배들은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 하고 영영 여기에 묶일 듯하다. 해가 지고 바닷물이 들어오면, 내가 보지 못 하는 밤 어느 시간에 배는 출항할 것이다. 고깃배와 그 배에 올라탄 선원들은 같은 곳으로 갈 것인데, 선원은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고 배는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뭍으로 돌아오기 위해 가고 배는 바다로 가기 위해 정박하는 듯하다.

여행이 주는 위로는 계통 없는 것이다. 길의 풍경 앞에 서고서야 비로소 내 어느 한 구석에 위로를 받아줄 틈이 있었다고 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안에 풍경의 위로를 받을 틈이 있었던 것일까? 바닷가에 부는 오후 바람은 편안하고 위로 받는 마음도 더불어 고요하다.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배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바다에 다녀왔다. 바다의 등장은 갑작스러웠다.

한 달쯤 걸려서 이상에게 보낼 답장을 다 썼다. 이상은 편지마다에 책갈피를 넣어서 보내주었는데, 나는 게으르고 또 편지 봉투에 넣을 게 마땅찮아서 겨우 명함 한 장 넣었다. 명함이라... 이상이라면 명함을 명함 아니게 받아 줄 것을 안다. 편지 안에서, 몇 년째 아무 곳에도 하지 않던 칼 이야기를 다시 했다. 잊은 줄 알았다. 칼은 더 이상 어떤 화두도 아닌 줄 알았다. 내가 여전히 한 자루 칼에 기대어 있고 끝내 닿지 못 할 곳을 향해 계속 한 자루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내 안으로 가지런하기, 온 몸으로 낮아지기. 제법 좋은 칼을 갈아 가고 있구나 싶다.

나보다 어리지만 내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경훈이와는 어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녀석은 와이프와 함께 먹을 술국을 아마도 삥뜯어서 갖고 온 듯하다. 같이 먹자고 소주 한 병도 갖고 왔는데, 나는 겨우 물잔으로 회답했다. 아깝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나는 중고 씨디 두 장을 사고, 편의점 와인 코너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던가. 꼭 한 잔 하고 싶었는데, 혼자 먹으면 일 년을 먹을 것 같은 와인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한참 고민했다. 녀석이 그렇게 올 줄 알았다만 한 병 질러 놓을 것을. 술 한 잔이 참 고픈 날.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도 가물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존재마다의 탄생 때마다 저 끝에서 달려와 맺히고 폭발하는 우주와 우주의 맥박 같은 갈등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제법 몇 년 떠벌리기도 했었는데.

숫자로 따지면 분명하게 어린 효빈이는, 도대체 어떤 시간을 거쳐온 것인지 가끔씩 던지는 한 마디 속에 막강한 내공을 언듯 보이고는 한다. 저 나이에 저런 내공이라면 도대체 저 아이가 내 나이쯤 되면 어떤 말들을 하게 될까? 기대가 된다. 효빈이에게 들려준 협곡의 양편에 앉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 십 년은 된 것이다.

우연찮게 지난 생각의 토막들을 불러오게 되는 요즘이다. 그 때쯤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치기 어린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생각의 바탕에서 이렇게 걸어온 지금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나는, 자랐다.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감정을 다만 소비시키고 마는 문장은 배설 외에 무엇도 안 된다. 그러면서 이런 문장들이나 쓰다니.

2009년 4월 5일 일요일

프랑스가 자랑하는 정신 톨레랑스 tolerance는 한국에서 '관용'이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정신.

톨레랑스의 정신은 긍정.에 가까운 것인가 싶다. 나와 다른 방식을 내치지 않고, 그것이 너의 방식이라고 긍정하는 일. 타인의 방식에 동의하고 함께 하지 않아도,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간격을 다만 긍정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운다. 오래도록,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같은 민족이, 같은 피붙이가, 또 같은 공동체 안에서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슴으로 안 것은 최근이었던가? 아니면 그 보다는 좀 더 일렀던가?

물론,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도 여전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아무래도 이명박 일당을 긍정하는 일은 불가능이라고 여긴다. 개념 없는 것들 하고는.

월요일 아침부터 또 이러고 있다.
작업이나 하자.
밀린 일들 하겠다고 작정한 일요일이다. 늦잠 약간, 청소 대충, 낮잠 조금 많이, 옥수수 삶아 먹고, 대충 빈둥거리다 보니 해 떨어졌다. 방해 안 될 음악 골라 두고 제법 밀린 메일들 답장을 부지런히 쓰니 밤이 늦었다. 밀린 일들은?

이상.이 보내준 편지 두 통의 무게감이 좋다. 나는 아직 첫 번째 답장을 쓰는 중인데 두 번째 편지가 왔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공들인 답장을 해야겠다. 어쩌나, 두어 장은 수첩에, 두어 장은 메모지에 써 두었는데. 봉투에라도 공을 들일까. 아는 사람들의 주소를 물어두어야겠다. 뭐 게으른 반군이니까, 게다가 편지는 공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거니까 그리 쉽게 쓰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물어 두었다가 이 사무치는 봄에 사방으로 편지 날려야겠다.

결국에는 혼자 서는 것이니까, 게다가 나는 일반적.이라는 수식과는 조금 다른 모양으로 살게 되어버렸으니까, 나이.라는 게 별로 걸릴 게 없다.만, 일단 관계라는 걸 두고 보면 무시하고 지내던 숫자가 도드라진다. 더구나 존대가 분명한 한국인의 삶 속에서라면 더더욱. 부끄럽게 채워온 것 같진 않은데, 딱히 거창하게 채운 것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아직 사방이 거칠고, 나는 아직 무엇이든 덤벼서 깨질 수 있을 듯한데, 사방에서 이제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시선들이 무겁다. 어쩌나. 결국엔 혼자이겠지만, 내 시작은 혼자가 아니었으니 멋대로 살 수도 없는 노릇. 기꺼이 어깨에 짊어질 주변의 무게들. 거 참, 오늘 문장들 지저분하네.

퇴고.를 시작해야겠다. 더 미룰 수 없으니까, 제법 그럴듯한 수정안도 나왔으니까, 이제 엉덩이 좀 무겁게 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은 꼬박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만들어야겠다.

밤이 늦었으니, 이제 일 좀 해야겠다.

2009년 4월 3일 금요일



자전거 탈 때 입는 방풍 외투에 청바지, 게다가 여름용 중절모라니. 어색한 조합이네. 괜찮아. 몇 시간 후에 비행기는 바닷가에 내릴 테고, 내 작은 가방 속엔 여름 바다에 어울리는 하얀 셔츠 두 장과 움직이기 편한 반바지가 들어 있으니까.

하늘을 가득 덮은 비행기의 구름을 상상하면 될까? 하늘이 막혀서, 너무 많은 비행기 때문에 하늘이 밀려서 제 시간에 이륙할 수 없다니. 대충 책을 읽고 편지도 쓰면서 시간을 때우면 된다지만, 편지 쓰고 책 읽는 걸 꼭 고함지르며 통화하는 아저씨를 뒤에 둔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할 이유는 없잖아?

오늘의 테마는 기다림.쯤으로 하면 되나? 한 시간을 늦게 뜬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에 오니 예약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 내가 예약한 게 아니니 내가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저들끼리 엉킨 연락을 풀고 방을 마련하는 동안 너르고 높은 로비 한 켠에 구겨진다. 조급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방에 가서 할 일이란 게 널부러져 책이나 뒤적거리는 건데, 로비에도 여름바람은 불고 책은 여기에서도 읽을 수 있으니까.

짐 풀고 나를 여기까지 불러온 사람의 비서를 만나서 가볍게 차 한 잔.까지는 좋았다. 나른한 휴가에 대한 환상은 딱 여기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뭔가 박자가 안 맞는다. 행사? 촬영? 무슨 말인가? 니네 비서는 그냥 가서 골프 치라던데? 난 못 친다니까 그럼 그냥 쉬고 가라던데? 내 짐을 봤냐? 나 그냥 가방 하나로 왔단 말이다! 휴가가 아니라 일 때문에 불렀다는 통보. 나와 연락한 다른 비서와 사이에 오해가 있었던 모양. 그냥 와서 놀고 가라던 약속은 어디 간 거지?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골프 대회며 대가 없는 휴가라니. 더 의심하지 않은 내 탓이다. 그나저나 어쩌나, 휴가라고 떡하니 믿고 장비도 안 가져 왔는데. 일은 터져 버렸다. 호텔 행사를 주로 찍는 현지 포토에게 급하게 연락해서 장비를 빌려보려고 하지만 불가능. 사방에 수소문해도 불가능. 제발, 아무 거나 괜찮으니 DSLR 바디 하나랑 렌즈 두 개만 빌려 봐봐. 제발. 응? 내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 땀을 저들은 아나? 게눈 달린 똑딱이 DP1 하나 밖에 없다니 어디서 들은 말은 있어서
“아, 그거 라이카 아냐? 그것만 해도 좋아.”
라이카는 개뿔. 모양만 대충 네모나고 게눈이나 달려 있으면 전부 비슷한 줄 안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믿어주니 고맙다.

계획을 수정하고 작전을 세우자. DP1의 결과물은 아쉬울 게 없는 수준이지만, 바디의 기계적 성능은 누구나 인정하는 최악. 게다가 28mm 단렌즈 화각. 고감도 노이즈는 상상 이상인데가, 한 장 찍으면 저장하는데 5초는 걸린다. 조루 베터리 겨우 두 개, 그리고 100장도 채 안 남은 메모리 카드. 이 일은 어쩐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어떻게든 해낼 걸 안다는 듯 바라보는 저 눈빛들을 어이 하리오. 알았다. 그렇다면, 최대한 광각의 특징을 살린 사진을 찍자. 그래서 광각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서,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하자. 그러니까 광각 하나 밖에 없다는 걸 들키지 않고, 광각의 사진만이 매력적이어서 다른 화각은 필요도 없었다는 인상을 만들어 주자. 아, 적어 놓고 보니 뭔가 그럴 듯하다.

섬에서 빛은 깊이까지 닿는다. 흐린 날 잠깐 동안 드러나는 빛 아래서조차 온갖 색들이 바로 그 색.으로 드러나고 온갖 대기의 질감도 바삭거린다.

주어진 과제는 골프대회 스케치. 그것도 한 사람만. 골프와 관련된 광고사진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빛이 낮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시간을 노린 것들이다. 멀리에서부터 걸어오는 인물이 부각되고 빛은 겹쳐진 언덕들의 세밀한 질감을 화면 안에 드러낸다. 여기에서 문제는 생긴다. 내 손 안에는 심도 확보도 안 되는 28mm 단렌즈 똑딱이 하나가 들려있을 뿐이고, 그들의 상상 속에는 잡지 속 광고 사진이 들어 있을 뿐이고, 행사는 열 시에 시작해서 축하 인사 몇 마디 하고 필드로 나가니 해는 중천에 떴을 뿐이고. 적어놓으니 제법 그럴 듯했던 작전은 흔적이 없다. 실패는 단호하고 명백하다.

저녁 행사가 시작되기 전 빈 무대를 채운 남방계 밴드. 남자 셋이 악기를 연주하고 여자 보컬이 노래한다. 가수란 멋진 사람들이다. 무엇도 없이 오로지 목소리 하나로 공간의 질감을 바꾼다. 그러니까 그 작은(또는 큰) 몸 안에 거대한 힘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필요하면 그저 소리를 열어내면 끝이다. 한 방이다. 장비 안 가져왔다고 한 방에 바보가 되어버린 사진가는 괜히 작아진다. 노래를 배워볼까?







마지막 날은 일정이 없고 돌아가는 비행기는 저녁 예약이라 종일 빈둥거린다. 아침 먹고 바닷가에 누워 제대로 노닥거리기. 바람이 세게 불어서 모래가 온 몸으로 침투한다. 파도도 높다. 저 바다 속으로 러시아 관광객들과 중국 관광객들이 뛰어든다. 제 돈 주고 왔다면 나라도 시간 아까워서 한 번이라도 더 바닷물로 뛰어들겠다만, 아침부터 바닷물에 뛰어들 생각은 별로 안 난다. 게다가 흐린 하늘에 이 바람에서야. 대신 점심 먹은 뒤부터 오후 시간 내내 호텔 수영장을 전세 내기.

반바지를 벗고 슬리퍼도 집어 넣는다. 짐 정리하고 상하이로 돌아가서 입을 외투를 다시 챙겼다. 체크 아웃 전 마무리는 야외 테이블에서 라면 한 그릇이다. 바람이 좋다. 이 바람 앞에 왜 조금 더 일찍 나 앉지 못 했다 싶은 바람이다. 걱정했던 일은 끝났다. 돌아가서 작업해 보아야 정확한 사태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마무리는 된 셈이다. 그랬다.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 그래서 가끔 힘들 때는 ‘지금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대부분의 버티기는 일종의 성취감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금을 버티자’ 정도까지는 봐 줄 만한데, ‘’어떻게든’ 지금’만’ 버티면 된다’는 정도까지 가면 이건 좀 문제가 있다. 그런 어쩔 수 없는 버티기의 반복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조금씩 허문다. 그렇게 버텨서 얻어낸 결과물이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모든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나는 그 모든 마디에서 힘주어 디디고 싶다.



파란만장 하이난 출장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