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30일 월요일

"그 때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서 말싸움을 하면 아마 그 때 내가 이길 거야. 그 때는 내가 좀 셋잖어. 뭐, 지금의 나는 웃지 않을까? 그러면서 생각하겠지. 아, 저 녀석이 방향을 잘 잡아서 잘 커야 할 텐데."

"요즘은 생각해. 오직 모를 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 같고, 정말로 진심으로 모르는 거. 그렇게 되는 생각을 해. 낮아지겠다는 다짐은 역시 아는데 모르는 척 하겠다는 뜻 같고, 정말로 내가 처음부터 가장 낮은 곳에 있었던 것처럼."

메신저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혜와 나눈 대화들. 처음 만난 것이 봄날의 학교 도서관 앞. 잎이 파랬고 바람이 따뜻했다.
"오빠는 생각 없이 지내서 참 좋겠어요." 지혜가 내게 건넨 첫 마디. 요즘에도 우리가 만나면 꺼내놓고 웃는 이야기. 내가 생각이 없나?

장비 잔뜩 지고 출장갈 때면, 서류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비행기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이면 저런 단촐한 모습으로 길을 떠나볼까 했다. 한국 오고 갈 때 짐 부풀리는 걸 지독하게 피하려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인 듯싶다. 출장을 빙자해서 놀고 쉬러 간다. 바닷가로 간다. 이번에는 카메라 장비 하나도 없다. 똑딱이 카메라 하나만 챙겼다. 노트북도 안 가져 간다. 이메일은 미리 자동답장 기능으로 설정해 두었다. 초대해 주는 사람 체면도 있는 거니까, 깔끔하게 입을 흰 셔츠 두 장, 그리고 이번 여름에 입으려고 사 둔 등산용 반바지, 책 한 권과 원고 뭉치. 맞다, 수영복. 쉬엄쉬엄 느리게 느리게 나른하게 햇볕에 널린 빨래마냥 널부러져 있다가 오려고 한다. 새벽에는 바다로 가고 저녁에는 수영장으로 가면서 물 속에 떠다니다가 와야겠다. 심심하면 책 읽고, 엽서도 쓰고, 또 원고도 써야겠다. 어쨌든 빨리 책이 되어 나와야 하는 거니까.

속도나 방향의 전환.같은 것.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바라는 것들. 눈 앞에 닥친 여러 상황에 대한 시원한 답들이, 널부러진 빨래 위로 내려와 앉아 주기를.

2009년 3월 29일 일요일

흐린 일요일 오후

운동화처럼 신고 다니는, 비 맞은 구두에 약칠해서 그늘에 두었다. 대신 등산화끈 질끈 동여매고, 옷도 등산복 비슷하게 입고 쌀 사러 간다. 여행가는 기분으로. 마침 들고 나간 책도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 책 쓰는데 참고하라고 쥐루 누나가 보내준 책이다. 잘 나가는 소설가답게 작가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재주가 좋다. 소소한 사건들을 씨줄 날줄 엮듯이 이어서 구성을 탄탄하게 하고 문장들은 재기 발랄해서 참 재미있다. 재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김사량이 중국으로 간 길을 따라 가는 다큐멘터리 이야기쯤에 이르면 작가적 사색의 내공도 드러난다. 좋은 책이고 많이 참고가 될 책이다.

근처 시장으로 가서 우선 김치찌개에 들어갈 마늘과 양파를 하나씩 사고, 옥수수도 하나쯤 사려다가 별로 좋은 녀석이 안 보여서 관둔다. 입구로 돌아나오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눈치보다가 어두운 계단으로 도망친다. 같이 안 놀아줄 모양이다. 비싸게 군다. 쌀집에서 그 중에 좋은 쌀 한 포대를 사서 어깨에 짊어지고 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쌀 떨어진 지 일주일이 넘었고, 며칠 동안 내 아침은 삼양라면과 짜파게티를 번갈았다.

에프상하이에서 만난 오래된미래.님이 월드비전 참가를 압박하셨다. 기꺼운 마음으로 하겠다 하겠다 하다가 오늘에야 등록한다. 내가 보내는 많지 않은, 그러나 적지도 않은 돈으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어느 땅의 아이가 밥을 먹고 자라겠구나. 밥만 먹지 않고 어쩌면 공부도 하며 자라겠구나 싶다. 굳이 해외 아동이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를 지독한 한국인으로 키워낸 한국의 민족주의 교육을 원망할 때가 있다고 답해야겠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인으로 살겠지만, 내 다음 세대는 당당한 지구인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어줍잖은 영토의 경계를 나누고 그 경계 밖에 있는 것들을 향해 날 세우는 것을 당연하게 가르친 교육은 사기다. 네가 버티지 않으면 경계 밖의 것들이 와서 너를 해치고 네 주변의 것들을 모두 가져갈 것이라는 내부적 협박이다. 교육은 그렇게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을 나누고 바깥 것들을 미워하게 가르쳤다. 도울 수 있다면, 내가 인지하는 공간의 가장 낮은 곳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주인이 되지 못 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일이 한 때 유행처럼 보인 적이 있다. 괜히 생각 없이 숟가락 하나 더하는 것 같아서 꺼리다가, 그런 유행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되겠다 싶어서 떠밀리는 마음으로 덜컥 신청했다. 자신에 대한 어떤 기대는 기꺼이 받아내기도 하고, 어떤 기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내기도 한다. 한 존재의 기대를 하나의 몸으로 받아내는 일은 무겁다. 집에서 풀 하나 키울 때도 그 풀이 제 온 생명을 내 보살핌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이제 저 산 넘고 바다 건넌 어디에서, 한 아이가 내게 그 성장을 의탁하게 되었다. 아, 한 삶이 어떻게 다른 한 삶을 온전히 받아서 버티어 내나?

이 나이까지 자란 나를 보면 나는 참 많은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제대로 배울 기회도 평등하게 나눌 수 없었던 부모님 세대만 보아도 그렇다. 배움에 대한 앞선 세대의 갈증들. 당신을 입을 것 쓸 것 아껴가며 내게 주신 것들이 얼마였던지. 덕분에 나는 잘 자랐다. 빌어먹으실 국경 이라는 틀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최소한의 기회는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삶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간절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이미 있는 기회를 버리고 대충 살겠다는 것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기회조차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이나 기회를 자각하지 못 하는 청년들을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곳 유학생들에 대한 생각도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는데도 대충 사는 것들이나 제 한 몸 살 찌우며 살겠다는 것들은, 좀 맞아야 한다. 어쨌든, 힘들게 지낸 몇 년을 지나 이제 이 정도 돈을 내 힘으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게 작은 일이 아니다. 이게 돌려주기.의 시작이 될 모양이다. 인터넷 뱅킹 클릭 몇 번으로 끝난 이 작은 선택이, 어쩌면 내 다음 삶의 방향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더듬이가 그렇게 말한다.

2009년 3월 25일 수요일

눈이 따끔거리는 아침

미리 약속을 했었다. 미팅 끝나고 연락 드리겠다고, 부르시니 가능하면 가겠노라고 했다. 미팅은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시작했고, 늦게 시작했으니 당연하게 늦게 끝났고, 집에 들러서 간단한 작업을 마무리하고 가겠다던 예정을 바꿔서, 남의 집에 너무 늦게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니까 곧장 모나님 댁으로 갔다.

늦은 자를 위해 마련된 음식은 보기에 맛깔스러웠고 먹기에 편했다. 반가운 봄나물 달래가 두부와 함께 무쳐져서 상에 올랐고, 소담하게 담긴 잡곡밥 옆에는 깨를 갈아넣은 된장국?을 닮은 국도 있었다. 보기만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상차림에 연신 감탄했다.

두어 시간을 작정했던 잡담은 길어졌다. 온갖 차를 꺼내 마시며 온갖 음악을 바꿔 들어가며 온갖 이야기들을 이었다. 고흐를 좋아하는 건치 어린이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원숭이와 얼굴 검은 할머니가 나오는 어릴 적 꿈에 대해 말하고, 도 닦은 사람들이 정말 공중부양을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정치가 생활 속에 들어와야 된다는 이야기는 시작은 했으나 호응이 없어서 흐지부지했고, 홍콩에 출장 간 메튜도 잠시 이야기 속에 등장했고, 개그는 타이밍이라는 전제에 모두 동의한 후 실습도 했다. 몇 번은 성공하고 몇 번은 실패했다. 실패는 응징당했다. 에프상하이의 새 맴버들을 어떻게 좀 더 빠르게 식구로 만들 것인가 생각하는 척 하다가, 술을 많이 마셨던 한 때의 무용담을 들으며 찬 홍차 몇 잔 마시고 잠을 못 잤던 볼링장의 전설을 되불러 오기도 했다. 늦게 빈손으로 찾아간 손님에게 모나님은 씨디 두 장을 덜컥 주셔서 나는 득템.했다. 고흐의 별 쏟아지는 밤이 표지로 그려진 노트도 받았는데, 서로간의 암묵적 동의 하에 수첩 주인은 건치 어린이가 되는 것으로 했다. 온갖 종교를 불러내서 결국은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아, 그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는지. 편집당한 이야기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이야기가 길어져서 새벽부터 촬영 들어가야 할 반군은 중간에 나왔다. 남은 두 분께, 참 고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을 잔뜩 전했는데, 얼마나 닿았는지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차마시며 노닥거리는 모임을 아예 정기 소모임으로 하자는 작당이 있었으나, 전개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다음에는 내 집에서 음악을 준비할 테니 마실거리 들고 오시라고 했다.

아, 잠 못 잔 아침의 뻑뻑한 눈이란.

2009년 3월 15일 일요일

수육

아는 형의 부탁으로 사진 촬영을 도와주러 갔다. 형의 여자친구분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올릴 주얼리 사진이었다. 주얼리 사진은 워낙 전문적인 분야인데다 나는 그 쪽 전문이 아니니 애써 나설 것은 아닌데 뭐 쇼핑몰용 사진이니 크게 부담가질 것은 없었다. 촬영을 도와주고 리터칭 방법도 간단하게 일러주었다.

고맙다는 뜻으로 그 분은 수육을 삶아서 내어 오셨는데, 이른 점심을 먹고 한참을 아무 것도 목 먹은 속은 쓰릴 정도로 아팠고, 허기진 속을 채우려고 얼른 몇 개 먹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더 아팠다. 빈 속이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오랜만에 수육을 제대로 먹을 기회였는데, 못 먹고 물러 나와야 하는가. 아 저 산처럼 쌓인 흰 비계덩어리여. 멀구나.

속이 점점 더 아파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먼저 간다고 하고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속이 쓰린 거랑은 어째 좀 다른 느낌. 설마? 지하철역까지 가볍게 뛰었다. 아, 체한 거구나. 너무 급하게 먹었구나. 아, 새우젓의 빈자리가 크구나.

집까지 오는 동안 가볍게 뛰고, 와서 소화제 먹으니 잘 때쯤에는 속이 편해진다. 자려고 눈 감으니 두고 온 수육이 아른거린다.

내 치열하고 슬픈 지난 주말 이야기다.

장 그르니예, 섬

장 그르니예, 섬

얇고 낡은 책이다. 종이는 바래서 누렇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함유선의 번역으로 1992년에 발행된 10쇄판이다. 조금 큰 수첩 크기의 책에는 사방 여백이 많고 글자들은 가운데 모여 있다. 글자들은 가장자리로부터 점점 바래가는 종이의 여전히 흰 부분으로 도망쳐 모여든 것 같아서 겨울 강에서 다리 아래 아직 얼지 않은 물로 모여서 추운 한 계절을 나는 고기떼를 닮았다.
제대할 때 부대에 있던 책 중에 몇 권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 중에 한 권이다. 지금도 책 앞에는 분류번호가 붙어 있다. 아끼는 책 중에 한 권이다. 아낀다기 보다는 든든한 책이고 든든하기 보다는 귀한 책이다. 가벼운 듯 깊은 사색의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시니 소설이니 하는 문장의 구분은 부질 없어 보인다. 언제나 까뮈의 이름을 업고 소개되는 장 그르니예는 까뮈의 문학적 스승이라고 알려져 있다. 까뮈의 문학적 성취 덕분에 더불어 알려질 수 있었으니까 장 그르니예는 까뮈에게 고마워할까? 아니면 언제나 까뮈라는 이름에 빌붙어 등장하며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 받지 못 하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할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화난 감정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다. 책에는 물루.라는 고양이 이야기가 한참 동안 나오는데,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사랑하던 고양이가 어느 날 나가서 심하게 다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이사를 해야 할 상황에 닥치고, 결국 고양이를 안락사 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그렇게 사랑한다던 고양이를 결국 안락사 시킨다는 결정은 위선이었고 기르던 동물의 삶을 마음대로 끊어낸다는 것은 인류라는 종족이 가진 오만이었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시간은 흘렀다. 몇 년이나 흘렀다. 물루는 여전히 안락사 당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분노하지 못 하겠다. 그 안락사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여전히 못 할 짓이지만, 다만 작가의 생각을 긍정해 주기로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알겠다.

책 퇴고 방향을 정했다. ‘상하이에 가 본 적 있습니까?’라는 가제를 가졌던, 이 도시에 대한 오로지 깊기만 한 열 두 꼭지의 문장으로 완성하겠다던 책은 여러 편집자와 출판사를 만족시키지 못 했다. 그러는 사이에 몇 달이 지났고, 예상했던 대로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원고의 부족한 부분들은 여름 풀처럼 자라서 이제는 사방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아, 이런 부족한 글을 묶어 책을 만들겠다고 했었구나. 그렇게 여기저기 보였었구나, 생각하니 부끄럽고 할 수 있다면 이미 나간 원고들을 모두 거두어 들이고 싶다. 책 속의 문장은 거칠고 서투르고 고집스러웠다. 그리고 괜히 힘 준 어깨마냥 높기만 했다. 책을 읽을 사람에 대한 고려도 없이 나는 그 사람의 책장만 생각했다. 어느 책장이든 내 책이 자리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다는 고집만 부렸다. 책은 ‘상하이, 7년의 여행’이라는 가제목으로 바꾼다. 한 명의 풋내기 졸업생이 어엿한 병아리 사진가가 되어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 무대로서 상하이는 다른 곳과 구분되어 도드라지는 매력을 드러낼 것이다. 상하이에 왔던 초기의 자료들을 찾기 위해 예전에 홈페이지로 쓰던 사이트를 열었다. 좀처럼 보지 않는 곳이다. 아, 그 곳의 나는 서투르고 섬세하고 따뜻했다. 그 때의 연장선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지금의 나와 어떤 연관성도 없는 듯 했다. 언젠가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게 부러운 모습이었다. 조금 엉성하긴 했지만, 그 때 문장이 지금보다 어쩌면 나았구나 싶기도 했다. 어찌나 위트 있는 문장을 구사하셨던지.

모나님과 쥐루 누나가 동시에 사다 준 손지연의 음악을 오늘 아침에야 들었다. 앨범 갖고 싶다고 에프상하이 게시판에 칭얼거렸더니 한국 다녀오시는 모나님이랑 한국에서 잠시 여행 온 쥐루 누나가 동시에 사다 주었다. 그것도 절판 된 2집을 뺀 1,3 집만. 차마 말은 못 하고, 두 분께 고맙게 받았다. 아직 서로는 이 사실을 모른다. 영원히 모르시기를.
마음에 드는 음악을 제대로 듣기에는 너무 늦지 않은 저녁시간이 좋다. 일정 공간을 제대로 채워 좋은 소리를 내려면 좋은 앰프 좋은 스피커도 있어야겠지만 좋은 공간도 있어야 하고 또 공간에 알맞은 볼륨이 되어야 한다. 내 집 거실에서 듣기 좋게 음악을 들으면 아랫집 윗집 눈치를 살짝 보아야 한다. 내가 워낙 민폐 끼치는 걸 못 하는 성격이니까 따지고 보면 내 걱정만큼 두 집이 신경을 쓰진 않을 것 같다만, 게다가 중국이니까 옆집에서 고성방가를 해도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눈치 살피는 나의 소심함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고른 시간이란 게 대기가 가라앉은 저녁 시간, 그 중에서 남들 잠들기 전이어야 되니까 대충 저녁 7시부터 9시 정도가 된다. 씨디를 받은 후 좀처럼 이 시간대에 집에 있을 여유가 없어서 씨디는 탐스러운 먹거리처럼 책상 위에서 개봉을 기다렸다. 더 기다리기 싫어서 오늘은 부러 새벽에 일어나 미리 앰프를 예열시키고 다른 일거리 좀 마친 후에 자리 잡고 앉았다. 밤 시간만큼이야 못 하겠지만, 아, 좋구나. 원고 정리하면서 들으려다가 양쪽 다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컴퓨터 밀어두고 음악만 들었다. 들으면서 슬쩍 이 음악을 어떻게 사진스터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김소월의 시와 비교해서 설명하면 되겠구나 싶어서 얼른 메모했다. 새로 시작한 스터디에는 제법 십 수 명이 참가하고, 배우려는 분들의 욕심도 대단해서 그 눈빛들과 마주치는 일은 즐겁다. 이번 스터디에서 나는 카메라 기초만 하기로 했는데, 그러니까 강평까지 넘어가면 사실은 월권이 되겠지만 그래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으니 해야겠다.



그만 쓰자. 잡담이다. 얼른 책이나 쓰자.

2009년 3월 13일 금요일

아, 파리넬리

작업해야 할 사진들 옆에 미뤄두고 새벽부터 영화 봤다.

얼마 전 혜림이가 살롱사진에 대해 물었다. 이제는 열등한 사진처럼 이야기되는 살롱사진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변호했다. 영화는 잘 찍은 한 장의 살롱사진을 보는 듯했다. 살롱사진은 사진이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아직 사진의 독자적 문법이 없을 때 회화를 추종하던 사진의 한 형태였다. 이후 다양한 사진가들에 의해 사진은 회화와 구분되는 사진만의 문법을 구축해 왔고 현대 사진에 이르면 사진은 더 이상 회화의 지위를 탐내지 않는다. 회화보다 현실에 가까이 들어간 사진은 예술의 지위 자체를 우습게 보기도 하고, 또 예술 사진은 회화와 다른 길을 통해 그 지위를 획득했다. 그래서 최신의 사진문법으로 무장하고 나름 치열하다는 자세로 사진을 하는 사람들에게 살롱사진은 우스워 보이고 이미 흘러간 과거의 유물처럼 받아들여진다. 잘 나가는 사진계에서 밀려난 사진은 역시나 시대에서 밀려난 이발소 벽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걸리거나 어느 식당 달력 안에 담겨서 고기 씹는 맛을 돋군다.

새롭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시대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생각은 여기 저기 남은 듯해서, 작가들은 어떻게든 다른 작품과 다른 세계를 펼쳐내려고 한다. 그 의지가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다른 작가들과 어쩔 수 없이 다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주객이 자리를 옮겨서 오로지 새롭기를 목표로 얕은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부작용도 생긴다. 인체를 기형적으로 변형시킨 인물화의 범람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한 작가가 다리를 길게 늘린 회화를 그려서 이슈가 되면 다른 작가를 팔을 길게 그린다. 그러면 또 다른 작가는 눈을 크게 그려보고 제 3의 작가는 눈을 지워버린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해석이란 것들은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다.

경극배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갔던 그들의 연습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무대 위의 일 분은 무대 아래서 십 년의 연습이다." 대충 기억하기에 이렇다. 그 때 나는 이 문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몰라서 물었고, 배우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 속에 담긴 뿌듯함이 남긴 인상이 아직 선명하다. 각각의 예술 장르는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형태를 개발해 왔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꾸만 빠르게 갈 것을 요구해서 지난 것들을 빨리 허물기를 주문한다. 시간이 쌓이며 만드는 무게감을 가볍게 본다. 좋은 살롱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그들이 들인 시간과 공력의 무게는 어줍잖은 아이디어 싸움이 함부로 낮추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롱사진이나 스트레이트 사진이나 순수예술 사진 모두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일 것이고, 그러니까 그 가치는 함께 존중받아야 한다. 서열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음악이 등장하고 화려한 색깔이 등장하고 귀족시대의 의상들이 등장하면서 듣고 보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그 바탕은 이야기에 두고 있는 듯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구성하고 화려하게 포장함으로써 참 보기에 좋은 영화가 된 듯하다. 새로운 기교를 넣어서 부풀리려고 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게 만든 영화 같았다. 사진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 영화는 거세당한 남자 성악가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여배우의 가슴은 어찌나 탐스러우시던지.

이제 사진 만져야겠다.

2009년 3월 12일 목요일

노래 이야기 몇 개

어제는 종일 비가 왔다. 머무르는 비가 아니라 한 번 쏟아지고 말 비라서 종일 제법 세차게 왔다. 일기예보에는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는데 새벽 나절에 비는 그친다. 하늘은 여전히 낮고 흐린데 빠르게 흐르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걸 보니 비는 더 안 올 모양이다. 그냥, 느낌이다. 바람이 좋아서, 외장하드에 들어있던 음악 꺼내서 듣는다. 컴퓨터로 음악을 들으면 포토샵 속도가 느려지고 또 따로 엠프도 있으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서 최근에 컴퓨터로 음악 듣는 일은 잘 없다. 대학교 입학하고 부터 조금씩 긁어모아둔 음악이니 제법 십 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음악들이다. 내 또래도 안 듣는 옛노래들부터 최신 유행곡 월 별로 모아둔 것까지 제법 있다. 역시, 음악 들으며 글을 적으면 도대체 방향을 잡을 수가 없구나.

음악여행 라라라. 무슨 개그도 아닌 것이 음악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요즘에 꼬박꼬박 챙겨 본다. 손지연.이라는 가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았고, 적우의 얼굴도 여기에서 처음 봤다. 강호동의 무릎팍도사. 이후로 기존 프로그램들이 개그쇼의 형식을 도입하는 듯한데, 어색할 것 같던 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인 듯하고, 가수를 불러놓고 노래 두어 곡 듣고 어색한 말 몇 마디 웃긴 척 하고 다시 노래 듣는 이 프로그램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진행방식은 그만그만한데, 불러세우는 가수들이 좋아서 그만하면 됐다 싶다.

이제는 떠나온 지 제법 된 내 작업실에는 낡고 큰 스피커가 네 귀퉁이에 있었다. 스피커보다 더 낡은 엠프도 있었다. 나보다 앞서 있었던 것들이다. 사람 귀가 간사하다는 것을 작업실에서 알았다. 그 낡은 것들에서 나와 나무 바닥을 울리며 내 귀에 닿던 소리는 컴퓨터 스피커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풍성함이었다. 2년 가까운 작업실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컴퓨터 스피커 소리는 귀가 아파서 얼마 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친 척 앰프를 샀다. 지름신의 가르침이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그저 저럼한 걸로 구색만 맞추면 되지 했던 것이 알아보는 사이에 점점 높아지고 높아져서 밥값 방값 걱정하던 그 때에 덜컥 분에 과한 앰프를 들였다. 내 집 거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앉은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몇 장의 씨디들.

음악은 그저 작업하는 동안, 딴짓하는 동안 배경처럼 흐르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앰프 사고 스피커 사고 씨디도 몇 장 사면서 알게 된 것은, 음악은 그냥 음악만 듣는 거다. 진공관을 예열시키고, 음악을 고르고, 따뜻한 물 한 잔 따라 와서 적당한 거리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음악 들으면, 좁은 거실에서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아, 음악은 행복한 것이구나,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음악에 대한 내 이해가 사진이나 문학에 대한 수준만큼 되었더라면 나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살았을 테지만, 아직 얕고 얕아서 도대체 모를 음악이 많다.

어떤 날은 문득 깨닫는 날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깨닫기도 하고 저녁 잠자리에 누워서 불끄고 깨닫기도 한다. 무엇을 깨달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 내가 자랐구나 싶기도 하고 나를 둘러싼 껍질의 한 쪽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흐리고 대지는 젖어 있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나는 조금씩 자라는 나를 느낀다. 아름다운 봄날의 흐린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메일 열었는데 호텔 촬영 의뢰가 왔다. 포트폴리오와 견적을 보내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눈치를 살펴야 하니까 의뢰가 촬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하나 둘 오는 연락이 반갑다. 이번엔, 티엔진이다.

새벽 맑은 정신에 적어두는 이런 주정같은 메모라니.

봄처녀 제 오시네






새벽 자전거는 들릴 듯 말 듯 콧노래 흥얼거리며 간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색동옷을 입으셨네.

봄과 처녀를 떼어놓을까? 아니면 봄처녀라고 붙여둘까? 떼어놓자니 두 단어의 개별성은 선명해지고 개별성의 두 단어 사이에서 생겨나는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단어 둘을 붙여서 ‘봄처녀’라고 쓰면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다. 봄은 잡스러운 기운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절이니까, 봄처녀가 좋겠다. 자전거는 어디쯤 와서 흩날리고 있을 봄처녀 색동 저고리 보러 바닷가로 간다.




봄은 떠나온 곳으로부터 온다. 대학시절 봄은 고등학교 너른 운동장을 몰아 다니는 모래바람이었고,바다 건너에서 맞는 봄은 고향 바닷가에 부는 비린내다. 봄에는 떠나온 모든 것이 그립고 봄바람은 가슴에 사무쳐서 이 계절을 지나는 일은 위태롭다. 위태로운 봄은 사태처럼 올 것이다. 한 번 두 번 신호를 보내다가 한 순간 와락, 덮쳐 올 것을 안다. 봄에 그리움은 꽃처럼 핀다. 아침 일곱 시 반, 집을 나선 자전거는 수주허를 따라 와이탄으로 가서 황포강을 건너는 배에 오른다. 주말 아침이라서 출근시간인데도 배는 제법 널널해 보인다. 자전거가 강을 건너가는 비용은 1.3원.








푸동으로 건너온 후 지도는 당분간 보지 않기로 한다. 저 동편 끝에는 너른 바다가 있다. 나침반 하나만 보며 가는 길, 개별 길들은 이름을 잃었다. 다만 방향성만 있는 길 위에서 자전거는 봄맞이 산책을 간다. 속도계도 보지 않기로 한다. 겨울용 자전거 복장도 벗어 던지고 가볍게 입고 나선 길, 지도를 포기한 자전거 앞에 지도에 나오지 않는 좁은 골목이며 흙길이 나와서 당황스러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준다.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간단한 음료수와 쵸코바 하나로 허기를 달랜다.












골목길과 번듯한 차도를 번갈아가며 네 시간을 달려서 자전거는 바닷가에 닿는다. 三甲港산지아강. 마음 속 목적지로 두었던 곳이다. 몇 년 전에 버스를 타고 왔던 곳인데, 특별히 볼 것이라고는 없는 누런 바다라는 기억만 있다. 그 ‘별 볼 것은 없는 것’이 보고 싶어질 줄 몰랐다. 살아가며 보면 그런 때도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하고, 한참이 지나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했고,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보았었구나 싶은 기억의 흔적만 남는 때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다만 보지 않으며 지나온 것들이었다. 무서워서 피하고 피했다는 사실이 다시 무서워져서 감추고 만다. 보이는 것들이 보이는 대로는 아닐 것이다. 산만큼 커 보이는 화물선도 수평선 끝으로 멀어져 가면 점으로 보일 듯하고, 저 끝에 한 점도 눈 앞까지 오면 태산만큼 클 듯하다. 도대체 모를 길 위에서 자전거는 방향을 잃고 다만 가는 것인데, 여정이 길어지면 자전거의 길은 결국 사람의 안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자전거 여행자들의 목적지는 결국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그 어디쯤이다.





이른 봄빛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바닷가 둑에 누워 낮잠도 잔다. 바닷가의 낮잠은 깊지 않아서 바람과 소리가 옅은 잠 속으로 들어온다. 멀리에서 지나가는 큰 배는 느리고 낮은 울음소리를 낸다. 항구에 정박하기를 기다리는 화물선들이 바다 가운데 떠 있다. 봄도 저기 어디쯤에 떠서 곧 이 땅에 닿을 것이다. 바다는 그 가운데 뜬 배와 그 앞을 지나는 작은 배와 물의 끝에서 그 배들을 바라보는 사람까지 모두 담아서 다만 넓고 깊어 보인다.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앉아서 마주보지 않고 멀리 먼 곳을 함께 본다. 그 자세로 오래들 있는다.







쓰고 있던 고글을 벗으니 부신 하늘이 푸른 것을 알겠다. 오늘 하늘이 파랗다. 깊게 푸른 것이 아니고 성글게 푸르다. 순수하고 고집스럽게 푸른 것이 아니고 온갖 것들 오는대로 모두 받아준 푸른색이다. 그래서 저 빛깔 하늘 속에는 온갖 것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향 뒷산에 지천으로 핀 봄나물 같은 하늘이다.





길게 한숨 자고 통과의례처럼 사발면 하나 먹고 난삽하게 가지 친 감정들을 쳐낸다. 바닷가의 감정들을 그대로 끌고 도시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먼지가 곱게 앉은 버스 종점의 편의점에는 사발면 먹는 동안 버스가 안 들어 오기를 빌어야 한다. 아, 라면은 다 익었고 저기 버스 온다. 흙먼지를 날리며.

아침에 탔던 배를 다 저녁에 타고 되돌아 간다. 시내로 들어오며 자전거는 다시 생활들 속으로 들어왔다. 채소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는 자전거들과 오토바이들 속으로 자전거는 간다. 오전에 맑던 하늘이 흐려진다.


바퀴 구른 거리 91km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 1

새벽에 버스는 아직 오지 않을 모양이다. 첫 버스를 기다리는데 풀숲에서 고양이가 운다. 작고 불안한 소리로 운다. 쪼그리고 앉아서 부르니까 회색털 고양이가 온다. 사람 손에 길러졌던 모양이다. 주저주저하다가 와서는 내 주변을 돌면서 몸을 비빈다. 아직 새끼다. 만져보니 목줄도 있다. 아, 사람 집에서 살았었구나. 어떻게 할까 하다가 목줄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만져보는데 어떤 방식으로 잠긴 것인지 잘 안 풀린다. 고양이는 장난치는 줄 알고 손가락을 깨물고 무릎 위로 올라와 배를 보이며 눕는다. 발톱 때문에 바지 여기저기가 상처난다. 안 된다. 이 놈아.

가만 보니 풀숲에 노란, 조금 덩치가 큰 녀석이 하나 더 있다. 이 녀석은 제법 사람을 경계하고 다가오지 않는다. 회색 새끼 고양이가 노란색 고양이를 따른다. 집 나와서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 그런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새끼 고양이는 노란색 고양이와 나 사이를 오고 가며 바쁘다. 고양이가 울면 풀숲 안으로 들어갔다가, 내가 손짓하고 부르면 무릎으로 올라온다.

버스 오는지 보는 사이에 노란색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이리 오라고 부르니 새끼 고양이는 몇 번 뒤돌아보며 멈칫거리다가 이내 노란 고양이를 따라 갔다. 갈등 끝의 결심 같은 걸 본 것 같다. 좋은 길잡이를 만난 고양이가 잘 살기를 빈다. 아, 끊어주지 못한 목줄이 아쉽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택시비가 아깝지만 어쩔 수 있나. 새벽 택시는 빠르다. 새벽 고가를 달리는 쾌감으로, 택시는 한 낮의 갈증을 달랠 모양이다.










# 2, # 3

난징루를 따라 끝까지 가면 그 곳에서 지하도를 통해 와이탄 강변에 갈 수 있다. 고흐의 그림들이 잔뜩 걸려있는 지하통로는 아마 그 옆에 있는 네덜란드 은행에서 돈을 댄 모양이다. 여기 지하도를 지나며 여기 그림들을 볼 때마다 이 그림들을 촬영한 사진가가 궁금해진다. 사진들은 고흐의 붓질을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일반적인 그림 촬영 조명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전체 밝기를 유지하는 동시에 측면에서 강한 하이라이트 광원을 써서 고흐의 붓질은 사진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실력있는 사진가의 잘 찍은 사진이다. 김훈의 문장이 그런 것처럼, 고흐의 붓질은 그의 숨을 갉아서 캔버스에 뿌려둔 것같다. 그래서 마침내 더 갉아낼 숨이 없을 때, 고흐는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고흐의 그림같은 사진을 찍겠다고 벼른 게 몇 년인데, 게으른 사진가는 그럴 능력도, 용기도 없다. 나는 길게 살고 싶다.













# 4, # 5, #6

공사현장은 일찍부터 움직인다. 벌판에 높이를 쌓고 또 허물고 다시 쌓는 일은 도시에서 익숙한 풍경인데, 상하이는 그 익숙한 것이 너무 많아서 마치 상하이의 특징적인 모습인 듯하다. 초봄 아침에 바람은 아직 거세고 기온은 찬데, 노동자들의 작업복과 헬맷은 어찌나 원색으로 찬란들 하신지.








28mm 화각은 마음에 든다. 사진은 시원하고 통쾌하다. 그래도 자꾸만 비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5mm의 화각은 어려웠지만 비장했었다는 감상같은 것. 그래도 28mm를 계속 써야겠다. 쉽고 경쾌한 화각이다.

2009년 3월 6일 금요일

살아가는 일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버티듯 사는 하루는 힘겹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앞을 막아선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 세상을 버티며 있는 것일까? 나이 들어가는 아들의 반쪽을 걱정하는 어머니께 푸념처럼 물었던 적이 있다. 한 몸도 거추장스러운데 제 발로 걸어 어디를 가란 말인가.

"어머니, 이 험한 세상에 또 아이를 낳아서 살게 해야 되나요? 사는 건 힘든데 그냥 나 하나로 그 어려움을 그치면 안 될까요?"

"여봐, 아들. 고생이라니? 생각해 봐. 네가 살아온 날이 고생이었어? 얼마나 재밌는 일이 많았는데! 아이를 낳아서 이 험한 세상을 또 겪게 한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재미난 세상을 살게 해주겠다고 생각해야지."

아, 어머니는 위대하다. 겨우 서른 생을 살아온 아들은 찍 소리 못 하고 두 손 든다. 그래, 살아온 날들은 얼마나 빛나는 하루들이었던가. 나는 그 빛들 속에서 또 얼마나 속으로 빛나며 나를 채워 왔었나. 이 신나고 재미난 세상을 나 혼자만 누릴 것은 아니구나. 살면서 내가 배우고 느낀 재미를 내 아이에게 알려주어야겠구나.

대부분의 일들이 양면성을 갖지만, 어떤 것들은 의심할 것 없이 마냥 아름다운 것도 있다. 사랑도 그 중에 하나다. 짝사랑의 설래는 마음도 좋고, 갓 시작된 풋풋한 마음도 좋다. 가까워질 듯 여전히 그대로인 거리를 재는 긴장감도 좋고, 농익은 질척함도 좋다. 빛 바래가는 건조한 느낌도 나쁠 것 없고, 큰 자리 비어버린 뻥 뚤린 허전함도 뭐 거쳐야 할 것이다. 또래 친구들 중에 사랑에 대해 무덤덤한 녀석들을 보면 내 마음이 가빠진다. 아, 두 번 사는 세상 아닌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

삼 주째 내리던 비가 그친다. 살짝살짝 그친다. 올듯 안 올듯 비가 그치고 날듯 말듯 햇빛도 나온다. 그렇게 봄이 올 모양이다. 나는 잘 쉬었다. 깊은 잠을 자고 영화도 보고 이런 저런 생각도 했다. 몸이 부드러워지고 정신은 말끔해졌다. 새로 검도를 시작했는데 칼을 휘두르는 근육은 많이 비어 있었고, 대신 빈 속에서 소리는 야무지게 뭉쳐 나왔다. 마침 일거리도 안 들어와서 아무 긴장도 없었다. 날 개이니 하나둘 작업 연락도 온다. 일요일에는 비가 안 온다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가보아야겠다. 토요일에 있을 사진스터디는 일찍 마쳐야겠다. 일요일을 위해. 그리고 만약에 비가 오면, 멀리 친구가 보내온 편지 한 통과 답장 쓸 종이 몇 장 들고 어디 편한 자리라도 찾아 나가야겠다.

사랑하자.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