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손바닥이 나갔다. 어제 운동 다녀와서 제법 큰 물집이 잡혔다. 일 때문에 밀려서 겨우 열흘 만에 운동을 갔더니 겨우 자리잡기 시작했던 손바닥 굳은살이 그 사이 풀려나고 있었던 모양이고, 지난 운동 때 깨먹은 죽도 때문에 새 죽도로 바꿨더니 손잡이 부분이 아직 거칠었던 모양이다. 이번 물집은 제법 커서, 가만 두면 다음 운동 때 더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얼른 새 살 돋으라고 물집 잡힌 부분을 걷어냈다. 쓰라린다. 샴푸할 때 내가 왼손 바닥에 샴푸를 받는다는 걸 오늘 아침에 처음 알았다. 한 손으로 머리 감고 한 손으로 로션 바르니 왼손 바닥이 막 그립다. 키보드에 손을 얹을 때도 왼손 바닥이 아랫부분에 닿는다는 걸 또 처음 알았다. 새 살이 돋고, 다시 벗겨지는 일을 두어 번 더 반복해야 손바닥은 단단하게 버텨둘 거다. 그 동안에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책 속에서, 모리 교수는 상처입은 제자에게 어서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상처의 바닥까지 내려가라고 말한다. 바닥에 닿으면 자연스럽게 바닥을 박차고 오를 수 있으니까, 애써 바둥거리지 말라고 일러 주신다. 나는 마음 급한 어린이니까, 얼른 떼어내고 새 살 돋으라고 아직 덜 아문 피부를 공기 중에 드러내고 만다. 이 정도는 버틸 만하다고 마냥 혼자 믿으면서.
아침에 인터넷에서 본 글 중에, 낙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낙타는 사람과 함께 사막을 건널 때, 힘든 내색을 잘 안 한다고 한다. 묵묵히 걷고, 든든하게 걷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때가 오면,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글은, 그런 낙타의 행위를 배신이라고 쓰고 있었다. 낙타 혼자 가는 길이었다면 그런 묵묵한 실천이 미덕이겠지만, 다른 존재와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에, 배신이라고 했다. 일방적 헌신이 미덕이 될 수 없는 관계가 동행이겠구나 싶었다. 내어줄 부분을 내어주고 받아줄 부분을 받아주는 연습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모나님은 언젠가 내게 그런 충고를 했는데, 상대방의 호의를 받아주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신세 지는 일에 서툰 반군은 밉지 않게 부탁하고 또 신세 지는 사람들 보면 그것도 참 좋은 재능인 듯해서 부럽다.
생각에 머물러 있던 일 몇 개를 진행시켜야겠다는 다짐. 더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일에 떠밀리고 쫓기기 전에, 내가 일을 몰아 가야한다는 다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애써 지우고, 가능한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한다는 자각. 그리고 아주 많이 늦기 전에, 꼭 야구장 응원을 가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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