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5일 수요일

눈이 따끔거리는 아침

미리 약속을 했었다. 미팅 끝나고 연락 드리겠다고, 부르시니 가능하면 가겠노라고 했다. 미팅은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시작했고, 늦게 시작했으니 당연하게 늦게 끝났고, 집에 들러서 간단한 작업을 마무리하고 가겠다던 예정을 바꿔서, 남의 집에 너무 늦게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니까 곧장 모나님 댁으로 갔다.

늦은 자를 위해 마련된 음식은 보기에 맛깔스러웠고 먹기에 편했다. 반가운 봄나물 달래가 두부와 함께 무쳐져서 상에 올랐고, 소담하게 담긴 잡곡밥 옆에는 깨를 갈아넣은 된장국?을 닮은 국도 있었다. 보기만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상차림에 연신 감탄했다.

두어 시간을 작정했던 잡담은 길어졌다. 온갖 차를 꺼내 마시며 온갖 음악을 바꿔 들어가며 온갖 이야기들을 이었다. 고흐를 좋아하는 건치 어린이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원숭이와 얼굴 검은 할머니가 나오는 어릴 적 꿈에 대해 말하고, 도 닦은 사람들이 정말 공중부양을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정치가 생활 속에 들어와야 된다는 이야기는 시작은 했으나 호응이 없어서 흐지부지했고, 홍콩에 출장 간 메튜도 잠시 이야기 속에 등장했고, 개그는 타이밍이라는 전제에 모두 동의한 후 실습도 했다. 몇 번은 성공하고 몇 번은 실패했다. 실패는 응징당했다. 에프상하이의 새 맴버들을 어떻게 좀 더 빠르게 식구로 만들 것인가 생각하는 척 하다가, 술을 많이 마셨던 한 때의 무용담을 들으며 찬 홍차 몇 잔 마시고 잠을 못 잤던 볼링장의 전설을 되불러 오기도 했다. 늦게 빈손으로 찾아간 손님에게 모나님은 씨디 두 장을 덜컥 주셔서 나는 득템.했다. 고흐의 별 쏟아지는 밤이 표지로 그려진 노트도 받았는데, 서로간의 암묵적 동의 하에 수첩 주인은 건치 어린이가 되는 것으로 했다. 온갖 종교를 불러내서 결국은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아, 그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는지. 편집당한 이야기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이야기가 길어져서 새벽부터 촬영 들어가야 할 반군은 중간에 나왔다. 남은 두 분께, 참 고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을 잔뜩 전했는데, 얼마나 닿았는지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차마시며 노닥거리는 모임을 아예 정기 소모임으로 하자는 작당이 있었으나, 전개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다음에는 내 집에서 음악을 준비할 테니 마실거리 들고 오시라고 했다.

아, 잠 못 잔 아침의 뻑뻑한 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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