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1일 화요일

속 깊은 친구 몇 명을 가깝게 두고 있다는 것이 참 복 된 일인 것을 알겠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변한 것 중에 한 가지는 친구의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이다. 형, 누나, 동생, 선배, 후배 등으로 나누어 갈래 지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냥 친구였다고 이제 안다. 한국어의 존칭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관계를 서열화하는 단점도 있다. 몇 살 터울 정도는 그냥 친구로 좋다. 사실 나이라는 것을 따져묻는 것도 서열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에게서 특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좋은 사람들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나이를 잊고 싶은데, 대충 그렇게 사는 것도 같은데, 나 혼자 잊는다고 잊어지는 게 아니다.

때로 멘토가 되고, 때로 쉴 곳이 되고, 또 언제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는 축복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잡 다단한 문제들도 나를 아는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해 보인다. 내 밖에서 나를 나로서 보아주는 그들이 있어서 가끔 벽에 부딪칠 때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훌륭한 답을 들고 웃으면서 내게 온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나로서 오롯하게 있을 수 있는 응원이고 나다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이다.

어머니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답답해 하신다. 그 때쯤의 여인이 한 번쯤 겪는다는 주부우울증인가 싶다가도, 그 증상을 보면 안타깝기는 어쩔 수 없다. 어머니께 내 좋은 친구들같은 친구들이 단 몇 명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아버지는 젊어서 이루신 것들에 기대어 지금도 세상을 호령하며 지내신다. 이제 좀 더 낮고 부드러워지셔도 좋을 듯한데 당신 자신은 아직 그럴 뜻이 없으신 모양이다. 아버지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몇 있었다면, 그래서 그 친구의 말이라면 온 마음을 열어서 듣는 아버지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친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들에게 받은 힘으로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힘들면 가서 기대고, 또 내가 잘 자라서 그들에게 꼭 같은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 그대들이 내게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알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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