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읽은 책에 대한 후기를 제대로 정리하기 시작한 때는 군대에 있던 무렵이었다. 중반 이후에는 워낙 할 일이 없었으니까, 4층에 있는 경목실에 가서 책을 빌려 읽고, 읽은 책의 후기를 모으는 작은 카페를 열었었다. 잊은 지 오래 되었다. 사이트 주소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 때 쓴 문장들을 다시 보면 참 부끄럽겠다. 애써 다시 찾지 말아야겠다.
유학생들에 대한 책임감은 항상 느끼는 부분이다.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저 혼자 잘나서된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조금씩 빌려주어서, 그렇게 조금씩 빌려와서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에너지를 갖는다고 믿는다. 그러면 그 에너지를 써서 성장하고, 성장한 후에는, 또는 성장하는 중에라도 다시 주변으로 내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가진 자의 마땅한 의무다. 개인적으로 대학생활을 통해 내가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교수님들이 계셨고 또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재미있는 공부도 있었다. 중국의 유학생들을 볼 때 그들이 누리지 못 하는 대학생활의 깊이가 언제나 아쉬웠다. 대학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고민들, 대학생이라면 읽어 보아야 할 책들을 아무도 일러주는 사람이 없다. 풍성한 길로 끌어주는 사람도 없다. 대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이제 행동으로 옮길 때다. 대학생활을 통해 내가 받은 혜택을 이 곳의 학생들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책 읽는 모임을 만들자는 소식을 듣고 얼른 동참했다. 그리고 첫 모임에서 유학생들을 참여시키자고 말했다. 유학생 사이트 두 곳에 관련 공지를 올렸고, 오늘까지 네 통의 메일을 받았다. 메일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부족함에 대해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하고 싶다고 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성장을 확신한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책 읽기 모임이 처음으로 선정한 책이다. 시간에 맞춰 책을 구할 수 없어서 제본해 읽었다.
국방부는 왜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정했을까? 책을 광고하려는 지능적 안티였을까? 표면적으로 읽자면 반미를 선동하는 책이라는 것이 그 이유일 텐데, 이 정부 하는 일이 대부분 그렇듯이 웃기는 작태다.
장하준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가 외치는 논리의 허구성을 실증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철저기 깬다. 책 읽으며 중간중간 정리하지 않고 다 읽은 후 감상문식으로 쓰려니 대충의 얼개만 기억날 뿐 세세한 내용들은 흐리다.
안재흥 선생님은 세계화에 대해 강의하실 때 국제화와 세계화를 구분하셨는데, 국제화는 여전히 국가를 그 행위 주체로 보고,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움직임으로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세계화에 대한 책이기보다는 국제화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야 옳다. 국민국가 시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국민국가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얼른 그 시대가 마감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앞으로 제법 긴 시간 동안 국민국가를 국제관계의 행위 주체로 설정하려는 모양이다. 장하준의 논리 전개는 국민국가를 그 중심에 둔다.
그리고 경제 논리로 정치를 덮는 방식은 위험해 보였다. 경제 발전을 위해 일정 부분의 부정부패를 용인한다는 발상은 정치로 옮겨가면 전 국가의 부패를 불러오고 정의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 우리는 이미 그 현장을 목격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까 책은 개발도상국들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적극적인 자국 중심의 경제를 운영하거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개과천선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분명한 힘의 논리 속에서 전자는 쉽지 않아 보이고,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하는 자본의 속성상 후자도 만만찮아 보인다.
책 중간에 내 메모는 대부분
“명박아……”
“그런데 명박이는……” 하는 식이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알고 있어야겠다. 언젠가 때가 올지 모르니까.
게으른 반군.
멋대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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