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30일 금요일

가기 전에 돌아본다

아마 대통령 경호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들은 아침마다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는다고 했다. 매일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만약에 오늘 죽어서 누군가 내 죽은 몸을 치워내게 될 때, 깨끗한 몸으로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아저씨 속옷같은 하얀 속옷은 비장한 각오와 잘 섞여 보이지 않았지만 그 하얀 색깔은 그들의 뜻과 맞아 보였다.

긴 여행이나 무모해보이는 여행 앞에서 나는 매번 뒤돌아본다. 집 나서기 전날에는 설겆이도 하고 사방에 널린 옷들도 제법 정리하고 쓰레기도 비워내고 집안도 정돈한다. 겁나서 그런다. 내가 다시 이 곳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런다. 여행 떠나기 전날에는 매번 새 여행을 후회한다. 왜 떠나겠다고 했을까? 지금이라도 다시 짐을 풀고 앉으면 안 될까? 싶다. 꾸려놓은 짐들과 뱉어놓은 말들에 떠밀려서 내 여행은 시작된다. 출발하기 전날의 두려움은 익숙해질 듯한데 매번 낯설고, 다만 두려움에 주저하는 내 모습만 친근하다. 만나고 헤어질 때, 머물다가 떠나갈 때 내 지난 모습이 가지런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여기 저기 사방 흩어둔 난삽함 말고, 가지런하고 분명한 선들로 남았으면 좋겠다.

여행이라고 떠나는 것이 오랜만이다. 긴장하며 떠나는 여행은 몇 년만이다. 짧은 여행이 될 것인데 한참만에 가는 것이다 보니 마음 속에서는 더 길다. 일주일쯤 전에 가려던 것인데 날씨가 맞지 않아서 이제야 간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하늘을 보고 다시 눕고 다시 눕고 했다. 짐은 대충 꾸려 두었다. 상하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황푸강의 발원지로 간다. 강의 발원지라는 목적지는 별 의미 없다. 다만 어디든 가야했고 그래서 어디든 찍은 것이다. 자전거는 새벽 지하철을 타고 상하이의 남서쪽 외곽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과거 황푸강의 발원지로 알려졌으나 이제 아닌 것으로 알려진 딩정호가 1차 목적지다. 아마 서너 시간이 못 걸릴 것이다.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가면 태호에 닿는다. 아마 점심 시간쯤일 것이다. 태호는 장쑤성과 절강성을 나눈다. 다시 남서쪽으로 국도를 타면 절강성 후조우에 닿는데, 느긋하려면 이 곳에서 하루 묵을 것이고, 마음이 쫓기면 더 가서 안시까지 갈 것이다. 안시에서 목적지 용왕산까지는 다섯 시간쯤 걸릴 것이다. 국도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고 현도에 해당하는 길이라서 길사정이 좋지는 않을 것이고, 산을 향해 가는 길이니 경사도 있을 것이다. 도착 시간에 따라 당일 등산하거나, 산 아래에서 묵은 후 3일째 되는 날 등산하려고 한다. 1500미터가 넘는 산인데, 이 산 어디쯤에서 황포강은 발원한다. 하산한 후에는 최대한 수월한 방법을 찾아서 상하이로 돌아올 것이다. 자전거를 담을 수 있는 전용가방을 따로 가져간다.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를 빼면 들어가는 크기다. 아마 가까운 항주까지 자전거로 간 다음 상하이로 오는 기차에 자전거를 실어 오거나, 운이 좋으면 산 아래에서 상하이행 관광버스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은 꽉 찬 3일쯤 걸릴 것이다.

지내다 보면, 여행이 고플 때도 있고, 여행이 절박할 때도 있다. 절박한 여행을 한참동안 미루어오다가, 내일 간다. 나는 건강하게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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