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8일 목요일
장진 희곡집 시나리오집
장진 희곡집 장진 / 열음사 / 초판 1쇄본 2008. 1. 15
장진 시나리오집 /장진 / 열음사 / 초반 1쇄본 2008. 7. 10
연극의 경우, 무대 위에서 발산되는 맥베스의 아우라와 배우의 아우라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분리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화 촬영의 특성은 관객의 자리를 카메라가 대체한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배우를 둘러싸고 있는 아우라는 소실되어 버리고 그와 함께 배역의 아우라 역시 사라져 버린다. …… 연극배우는 배역의 성격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하지만 영화배우의 경우 이런 동일시의 기회는 거의 부정당한다. – 발터 벤야민,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예술의 각 장르는 그 마다의 문법을 갖는다. 현대예술은 보이지 않은 것, 말할 수 없는 것, 말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려는 듯하다. 다른 장르와 구분되는 영화만의 문법은 무엇일까? 소설이어도 되고 연극이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아니면 안 되는, 그래서 꼭 영화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진.은 제법 잘 나가는 연극 연출가이고 또 영화감독이고 또 시나리오 작가다. 배우도 하던가? 그가 만든 영화에는 장진스러움.이 잘 드러난다. 영화가 왜 꼭 영화라는 형식을 빌어야 하는 것일까? 그 내용을 글로 써 두면 안 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장진의 영화는 그럴 듯한 답을 전하고 있다. 팀 버튼 감독이나 워쇼스키 형제쯤 되면 그들의 문법은 참 영화스러워서 다른 장르로 옮겨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영상의 힘이고 또 영화라는 틀에 잘 들어맞는 이야기의 힘이다. ‘아는 여자’를 보며 더욱 크게 느낀 장진.스러움 역시 영화만의 문법을 잘 적용시킨 것으로 보였다. 연극판에서 단련된 이야기의 힘, 리듬을 타는 능력이 빚어낸 결과라고 본다. 전봇대를 타고 전기 위에 실려 전해지는 사랑.을 누가 상상했을까? 그게 소설이라면, 그게 사진이라면, 음악이라면, 행위예술이라면, 설치미술이라면?
영화가 다른 예술 장르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장황하게 쓰는 것은, 사실 그 확연함이 정말 확연한 것인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극과의 차이라면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영화라는 예술이 처음 등장한 무렵 발터 벤야민은 영화와 구분되는 연극의 힘을 위와 같이 썼다. 그의 글이 연극에 대한 일방적 찬양이거나 영화에 대한 비판인 것은 아니고, 다만 연극을 변호하는, 연극을 본 적 없고 연극을 멀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연극의 힘을 멀게나마 전해줄 수 있는 문장이어서 옮겨 왔다. 나도 제대로 연극을 본 적이 없다. 무대의 현장성이라고 하면 되나? 그리고 배우의 호흡이 닿는 가까운 거리라고 하면 되나?
시나리오집에는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소나기는 그쳤나요?, 고마운 사람, 거룩한 계보, 아들, 공공의 적 1-1: 강철중. 모두 7편의 영화 대본이 실려 있고, 희곡집에는 아름다운 사인, 박수 칠 때 떠나라, 택시 드리벌, 웰컴 투 동막골, 서툰 사람들.까지 5편의 연극 대본이 실려 있다. 시나리오집에 있는 것들 중에는 단편 2편을 제외하면 모두 영화로 본 것들이고, 희곡집에 있는 것들 중 박수 칠 때 떠나라.와 웰컴 투 동막골은 영화화 되어서 또 본 것들이다. 이미 본 영화는 대본 사이사이가 모두 장면으로 떠올라서 상상의 공간이 적었고, 아직 보지 않은 희곡들은 연극에 서툰 나로서 어떤 무대도 그려낼 수 없었다. 이야기를 현실에 들러붙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사이마다 치고 빠지는 위트를 기발하게 구사하는 대본들은 따로 떨어져 있어도 통째 하나의 작품인 것처럼 닮은 색깔을 낸다.
다른 생을 살게 된다면, 연극 배우는 한 번 겪어보고 싶은 직업이다. 무대 위의 배우도 멋지고, 배우를 움직이게 하는 글을 쓰는 일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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