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30일 금요일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 효형출판
1998 7월 초판 발행
2006 6월 2판 4쇄 발행

내가 사는 집 화장실 변기 뒤에는 책이 두어 권 있다. 화징실 책들은 오래 간다. 보통이 두어 달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책은 족히 대여섯 달쯤 되었다. 아침마다 변기에 앉아 있는 잠시 동안에 읽는 것이 고작이니까 끽해야 하루 한 두 장이다. 거의 모든 장 모서리마다 접혀있다. 모든 장마다에서 멈췄다는 뜻이다. 건축에 대한 에세이로 이루어진 이 책은 화장실책 출신이다. 출신.이라고 밝혀두는 것은 출신과 현재가 다르다는 의미다. 책이 1/4쯤 남았을 때 화장실에서 가져 나왔다. 아침에 인터넷 기사 하나 보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어서 해야겠다 싶었다.
입만 열면 똥내가 나는 이명박의 말이었다. 지방 행정관청들이 왜 그리 높은 로비를 가진 그럴듯한 건물을 짓냐는 야단이었다. 경제도 어려운데 그런 쓸데없는 돈을 쓰지 말라는 딴에는 근검 절약하는 소리였다. 앞으로는 공공기관 건물을 아파트처럼 지으라신다. 아침 식사하시던 이 땅의 많은 건축가들 혈압 좀 올랐겠다. 천박하다. 말끝마다 그 기본 없음이 절절히 드러난다. 그 서툰 입을 변호한다는 자들의 입 또한 다를 것 없다. 알고 속이는 것들은 더 나쁘다. 아, 이명박의 입에서 똥내 난다는 말이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맞춤법도 무시하는 것이 예사니 문학이란 것도 알 리 없겠구나. 비유법이라는 것이다. 나 잡아가지 마라.

건축가가 쓴 에세이다. 서현.이라는 이름이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는 연예인처럼 이름난 몇몇 건축가의 이름을 내 장식처럼 아는 것이 고작이라서 이 이름은 처음이다. 검은 표지의 책은 한 권의 건축물 같다. 그 구조의 단단함이 잘 지어 올린 한 채 집 같다. 차례만 보아도 책의 단단함을 알 수 있다. 공간을 정의하고, 공간을 장악하고 또 비례를 맞추고 공간 속의 비어있음에 대해 말하고 공간을 구축하는 질서와 질서의 단단함, 그리고 공간을 감상하는 겸손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아무런 실체 없이 흐느적거리는 감상으로 질척거리는 책들이 많은 요즘에, 이 책은 단단한 실체와 실체를 꾸미는 정돈된 문장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단단하고 고운 문장들이다. 도대체 건축가라는 사람이 문장을 이렇게 잘 써도 되는 것인가? 건축가이기 때문에 이런 군더더기 없고 잘 구축된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땅의 건축가들은 모두 이런 문장을 구사한단 말인가? 책 읽는 순간마다 내가 쓴 문장에 생각이 닿아서 부끄러웠다. 내 글은 어땠는가? 출판하겠다고 끄적거린 문장들에 대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글이 너무 어지럽다’는 지적을 몇 곳에서 들었다. 제대로 된 설계도 없이 시작한 글이어서 그렇다. 기존에 써 두었던 인터뷰도 끌어오고 여행기도 가져다 붙이고 버리기 아까운 메모들도 끼웠다. 여기서 나무 토막 하나 저기서 벽돌 한 장 식으로 주워서는 보기에만 그럴 듯하기를 바라며 얼기설기 지어 올린 집이 된 모양이다. 아, 허물어야 하나. 그럴 용기도 없다만.

상하이의 빌딩들은 그 모양이 제각각이다. 건축법으로 정해놓아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은 그 디자인이 반드시 다른 것들과 달라야 한다. 그렇게 건축하려고 들면 설계비부터 해서 완공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더 많은 공사비가 들 것인데, 그럼에도 그렇게 하는 이유는 현재의 상하이를 보면 누구나 공감하게 된다. 서로 다른 모양의 건물들이 모여서 만든 상하이의 빌딩 숲은 보기에 좋다. 건축을 모르는 입장에서, 나는 건축가의 고민은 어떻게 좀 더 다르게 보일까? 어떻게 좀 더 그럴 듯하게 보일까? 정도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 건축가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건축이란, 사람의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건축가가 어떤 동선을 짜느냐, 어떤 방식으로 층을 올리느냐에 따라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바뀐다. 그래서 건축이 위대하고 또 조심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땅 위에 직립하고 선 빼곡한 건축물들 속에는 당대의 삶에 대한 건축가의 치열한 고민들이 있을 것이다. 모든 예술의 종착지는 건축이라던 바우하우스의 선언은 제법 맞는 말인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길 걸으며 보는 모든 건축물들을 다시 본다. 그 정신까지 읽어내는 것은 요원하겠지만, 그래도 건축의 정신을 보려는 내 시도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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