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7일 월요일

베이스가 좋아진다. 요요마의 첼로 정도에서 느끼던 호감은 게리 카의 베이스 연주쯤으로 더 내려갔다. 저음은 고음보다 층간 소음이 잘 전해진다. 아파트에서 듣기에는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밤에 듣는 베이스 음악은 심장에 바로 닿아서 심장박동이 음에 반응한다. 아랫집 윗집에 조금 미안하지만.

악기 하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건 맘처럼 쉬운 게 아니다.

때가 되어서 악기를 배우게 될 때, 콘트라베이스나 안 되면 더블 베이스라도 배워야겠다. 더블 베이스보다 좀 더 큰게 콘트라베이스인가? 단지 그 차인가? 더 크면 음이 더 낮은가? 뭐 어쨌든, 악기는 정한 셈이다. 활로 켜는 것보다는 손가락으로 튕기는 게 더 나을 듯. 도구를 하나라도 덜 쓰니 다루기에 더 쉽지 않을까?

가족 재즈밴드라도 만들어야지. 근데, 온 가족이 다 베이스를 좋아하면 어쩌지?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샤워하다가 불쑥 드는 생각.

사람들은 왜 '그리스인 조르바'에 열광했던 것일까? 아마 이윤기의 번역이었던 듯한데, 번역가 스스로도 자신의 번역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했고, 읽는 입장에서도 말의 맛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었던 듯한데, 번역의 문제를 떠나서, 왜 사람들은 한 명의 그리스인을 그토록 사랑했었을까?

되는대로 막 산 것 같은 인상에,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그렇게 나이 든 인물. 아마 그 대충 산 것 같은 삶을 관통하는, 사실은 단단한 어떤 삶의 고집 같은 걸 사랑한 것일까? 성인들이 보여주는 삶이 위대하기는 하나 일반인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이라면, 조르바의 삶은 나와 동시대를 호흡하고 바로 옆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도달한 어떤 경지였기 때문 아닐까? 뭐 어쩌면 쉽게 닿을 수 있겠다는 친근감이었을까? 작은 일에 감동하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고, 어떤 계산도 없이 좋아하는 대상을 마음껏 사랑하고, 자신의 가치와 본질을 스스로 잘 알고, 삶 앞에 한 치 주저함도 없이 당당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성인들의 삶이 모든 유혹을 끊어내고 스스로를 가두는 과정을 통해 완성에 도달한다면, 조르바는 삶 속의 모든 유혹과 화해하면서 마침내 이루어낸 경지에 닿았기 때문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조르바의 죽음은, 성인의 죽음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침대에서 일어나 힘찬 발걸음으로 창문가로 가서 호탕하게 웃고는 그 자세로 죽었다지 않나. 그 웃음은 마치 '다 이루었노라' 내지는 '한 세상 잘 살았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사실 이 아침 가장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샤워기 밑에 서서 왜 갑자기 조르바가 생각난 것일까?

2009년 4월 23일 목요일

유난히 시계視界가 좋은 날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저녁이 그렇다. 창 밖은 마침 어두워지는 중이었는데, 아주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작은 베란다를 실내로 끌어들여 놓은 내 방의 창문은 서쪽을 향해 둥글게 나있는데, 서쪽으로는 아파트 단지와 그 너머 낮은 건물들의 꼭대기가 이어져서 지상과 하늘의 경계를 만든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멀리 중산공원에 있는 롱즈멍 호텔의 야간조명이 보인다. 이렇게 시계가 좋은 날은 한 달에 잘 해야 한 번 정도 밖에 없다. 이런 날은 건물의 외관을 찍기에 좋은 날이다. 뿌연 날씨에 찍고 이 만하면 됐다고 자위하며 돌아선 건물들이 미련처럼 남아서 떠오른다. 마침 대기는 건조하고 하늘은 흐리고 낮아서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되었다. 이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면, 그래서 저 하늘 너머에서 곧 태풍이라도 올 것 같은 날씨였다면 내 마음은 미리 날았겠다.

퇴고를 시작한 원고는 진도가 잘 안 나간다. 문장을 마련하지 못 한 기억을 내용만으로 엮으려니까 그렇다. 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문장은 빠질 것이 없지만 내 기억력은 선택과 생략에 능하다. 그래서 닥친 상황에 대한 문장은 참 좋은 것을 알겠는데, 지나간 일에 대해 기억해 쓰려고 하면 문장은 맛도 안 나고 꼭 필요한 요점 외에 주변 상황들의 많은 부분을 생략해 버려서 쓰고 돌아본 문장은 문장이라고 부르기 부끄럽다. 내 다음 책은 아마 길에서 쓰게 될 것이다. 기억이 지나간 일들을 선택하고 선택받지 못한 이야기들을 지워버리기 전에, 싱싱한 비린내 나는 문장들을 묶어 내는 책이 될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월드비전에 후원신청을 한 것이 한 달 가까웠는데, 오늘에야 이메일을 통해 내가 후원할 아이에 관한 내용을 받았다. 아마 신청할 때 쓴 한국 주소로 우편물로 발송되었던 모양이다. 이메일을 통해 정보를 받겠다는 문의 메일을 보내니 이제야 보내준다. 내가 도울 아이는 말리.에 사는 토고.라는 이름을 가진 일곱 살 남자 아이다. 말리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 피부색이 검고, 눈이 크다. 사진 좀 잘 찍지 그랬나. 흙벽 앞에 세우고서, "자, 사진 찍자. 예쁘게 찍어야 사람들이 널 도와줄 거야. 말 잘 들어야지."하며 카메라가 폭력을 휘두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이는 겁에 질려서, 팔려나가는 짐승의 눈빛으로, 자신이 받는 도움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사진 속에 있다. 때묻은 푸른색 티셔츠를 입었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쓰여 있고, 남자 형제 네 명에 보통의 건강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보다 윗줄에 아동 번호.라는 제목으로 이 아이는 몇 개의 숫자로 그 존재를 대신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얼마의 돈이 네 삶을 구하지는 못 할 듯한데. 내가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고 해야 네가 그 뜻을 받아들이기도 아직 어린데. 힘 앞에 주눅 든 네 표정 앞에 나는 주눅 든다. 어쨌든, 한 아이의 눈빛 덕분에 나는 열심히 제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서로 돕고 살자. 나도 힘이 들 때는, 버텨야 할 이유를 생각하마. 부족한 내가 기꺼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마. 나라도 세상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는 의지가 되니 그래도 사는 것이 낫다고 믿으마.

유난히 정신이 맑은 밤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밤이 그렇다. 어제 늦게 잠든 덕분에 아침에는 늦잠을 잤고, 덕분에 요 며칠 새벽마다 하던 원고 퇴고를 오늘은 못 했다. 한 번 엉킨 일과는 계속 이어졌는데, 마침 별다른 일정도 할 일도 없었던 하루는 무료하게 갔다. 인터넷으로 영화도 보고 한국 쇼도 보면서 밝은 날을 보냈다. 며칠 분주하고 단단하게 살았던 뿌듯함으로 오늘 하루의 나태함 정도는 덮어도 좋은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이렇게 정신이 맑으니까, 오늘은 편지라도 써야 하나. 어제 혜림이가 보내준 히긴즈 트리오라는 재즈밴드의 음악을 씨디로 구워놓고 아직 듣지 않았는데, 아랫집 윗집에게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다 늦은 밤에라도 들어 보아야겠다. 부탁받은 승우 형 렌즈도 얼른 팔아줘야겠고, 허락의 전화를 해 준 승민씨 강의도 짜 보아야겠다.

조금 더 경쾌하게, 리듬을 타며 걷자. 다시 못 올 봄이지 않나.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1-2






시간은 빨리 흘렀다. 1년 반을 예상하고 온 길이었다. 1년의 교환학생 과정을 보내야 했고, 그 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중국어 실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 학기 먼저 와서 따로 어학연수 과정을 듣기로 했다. 시간의 끝이 정해지면 남은 시간의 크기가 작아 보인다. 이 넓은 땅을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배워가기에 일 년 육 개월의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어학반의 수업은 오전과 오후 수업이 하루씩 번갈아 있어서 하루 중의 반나절은 마땅히 할 것이 없었고 학교 바깥은 끝 간 데를 모를 신천지였다. 카메라 한 대와 지도 한 장, 나침반 하나를 챙겨서 틈 날 때마다 도시를 채집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도시는 거대했다. 지도 속에는 도시를 관통하는 강과 길이 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지도 속의 점들을 잇고 있다. 그 연결은 가늘어서 아슬아슬해 보였다. 2차원의 평면 속에 면적과 위치만으로 존재하는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직접 가 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학교가 있던 곳은 새롭게 도심권이 형성되는 쉬자후이 지역이었고, 그 곳에서 화하이루를 따라 버스를 타면 온갖 백화점들이 늘어선 길을 지나 상하이의 몇 안 되는 전근대 건축물 예원의 서쪽 끝에서 버스는 멈춘다. 골동품 시장과 귀뚜라미 시장을 지나고 남방 정원의 흔적을 본 후에는 더 동쪽으로 걸어서 황포강의 야경이 유명한 와이탄에 닿거나 북쪽으로 걸어서 상하이의 가장 번화한 거리 난징루로 갈 수도 있다.



이틀 썼는데, 몇 줄 안 되네. 이렇게라도 해야 얼른 수정이라도 할 듯.
시내 나갈 일이 생겨서, 볼 일들 체크하니 시간이 조금 남네? 날씨도 조금 좋네? 아하, 오랜만에 산악용품점에 가서 속옷이랑 양말 좀 살 궁리를 하니 지름신께서 또 살살 오시려는 듯.

갑자기 씨디피 살 궁리. 엠프 산 것이 1년이 가까운데, 씨디피는 아직도 승우 형이 빌려주신 디제이용 씨디피. 뭐 맘에 드는 걸로 사자면 가격은 비싸고 지갑은 비었고, 무엇보다 음질 차이도 가격만큼 안 날 것이 뻔하니까, 그냥 중고 매장에 가서 저렴하게 구하면 500원도 안 할 텐데, 난 왜 1년이나 가깝게 그걸 안 샀던 걸까?

이렇게 좋은 날씨가 며칠 더 이어진다면, 어느 날 불쑥 씨디피를 지를 것 같은 반군. 이왕이면 리모콘 달린 걸루다가.

소소한 지름이 주는 삶의 의욕이라니. 으하.
속 깊은 친구 몇 명을 가깝게 두고 있다는 것이 참 복 된 일인 것을 알겠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변한 것 중에 한 가지는 친구의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이다. 형, 누나, 동생, 선배, 후배 등으로 나누어 갈래 지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냥 친구였다고 이제 안다. 한국어의 존칭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관계를 서열화하는 단점도 있다. 몇 살 터울 정도는 그냥 친구로 좋다. 사실 나이라는 것을 따져묻는 것도 서열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에게서 특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좋은 사람들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나이를 잊고 싶은데, 대충 그렇게 사는 것도 같은데, 나 혼자 잊는다고 잊어지는 게 아니다.

때로 멘토가 되고, 때로 쉴 곳이 되고, 또 언제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는 축복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잡 다단한 문제들도 나를 아는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해 보인다. 내 밖에서 나를 나로서 보아주는 그들이 있어서 가끔 벽에 부딪칠 때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훌륭한 답을 들고 웃으면서 내게 온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나로서 오롯하게 있을 수 있는 응원이고 나다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이다.

어머니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답답해 하신다. 그 때쯤의 여인이 한 번쯤 겪는다는 주부우울증인가 싶다가도, 그 증상을 보면 안타깝기는 어쩔 수 없다. 어머니께 내 좋은 친구들같은 친구들이 단 몇 명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아버지는 젊어서 이루신 것들에 기대어 지금도 세상을 호령하며 지내신다. 이제 좀 더 낮고 부드러워지셔도 좋을 듯한데 당신 자신은 아직 그럴 뜻이 없으신 모양이다. 아버지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몇 있었다면, 그래서 그 친구의 말이라면 온 마음을 열어서 듣는 아버지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친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들에게 받은 힘으로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힘들면 가서 기대고, 또 내가 잘 자라서 그들에게 꼭 같은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 그대들이 내게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알게 해야겠다.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1-1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바람이 차다. 두어 번의 여행으로 한국보다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있는 날씨는 방심하기에 딱 좋을 만큼의 추위다. 한국의 추위가 정면으로 몰아쳐오는 것이었다면 이 곳의 추위는 바닥으로 낮게 깔려서 온다. 봄이 코앞인 것 같아서 한 낮의 느낌은 겨울을 이미 지나 보낸 듯한데 몸의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덤벼오는 추위는 스며들 듯이 온 몸을 감았다. 2월의 얇고 낮은 추위가 바다 건너 온 유학생을 처음 맞았다.
유학원에서 나온 가이드를 따라 짐짝처럼 실려 한 학기 동안 중국어를 배울 학교로 간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 해야 한 줌이 채 되지 않고, 가이드가 없다면 국제 미아 되기 딱이니 짐짝보다 나을 것도 없는 셈이다. 몇 장의 뜻 모를 종이에 이름을 쓰고 몇 권의 책을 정신 없이 받았다. 수속이 끝났다.

역할을 다한 가이드는 돌아갔다. 임시숙소로 배정 받은 방은 큰 길가에 있었다. 룸메이트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였다. 인사는 어색했다. 겨우 며칠 동안의 인연일 것을 서로 알았다. 짧게 인사하고, 룸메이트는 다른 수속을 위해 나가고, 해가 지고, 방은 넓었고, 방을 가득 채운 공기의 질감은 낯설었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 시작은 언제나 무서운 것이다. 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고,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도 없는 것이다. 상황이 내 뜻대로 움직여 준다는 보장도 없고,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작정한 목적지에 가 닿으리라는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인 것이다. 이제껏 지나온 많은 시작들을 생각하며 곧 익숙해 질 것이라고 다독여 보지만 그래도 공중에 뜬 마음은 좀처럼 낯선 땅에 내려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낯선 악기 소리가 산란한 마음을 깨웠다. 소리는 얇고 낮았다. 도로변에서 출발한 소리는 온통 비어서 막막한 공간 속으로 이른 봄 추위처럼 낮게 왔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인상적인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에 공간은 너무 낯설고 넓었고 긴 저녁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카메라를 들고 소리를 따라갔다.

맹인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차들을 등지고 앉아 얼후를 연주하고 계셨다. 중국의 전통 악기 얼후는 뱀가죽으로 덮은 울림통에 두 줄을 묶어 활로 켜서 소리를 낸다. 소리의 질감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이 십 수 년 만에 처음으로 긴 외국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제법 어울렸다. 할아버지의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한참을 들었다. 저 소리에라도 동화될 수 있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의 등 뒤로 자동차의 불빛들이 흐르듯이 가고, 할아버지와 나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갔다. 생경한 풍경이다. 사람들의 옷차림,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모습, 네온 사인 속에 들어 앉은 글씨들, 사람들이 지나며 내는 소리, 바람 속에 섞인 냄새. 무엇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손에 익은 카메라 하나만 겨우 익숙하다. 셔터를 만지작거리고 렌즈를 괜히 돌려본다. 할아버지 앞에 놓인 그릇에 동전 하나를 떨어트리고, 물었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 학교에 있는 유학생인데요.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보일 듯 말 듯,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단어로 대충 얽어낸 문장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내 질문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할아버지는 내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신 것인지, 그리고 내 요청에 대한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단지 단어의 부족함 때문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은 묘했다. 맹인이 사진에 대해 갖는 감상은 어떤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상을 포착해 액자에 담아 둔 장면은, 보이는 것과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할 그 앞에서 허락을 받는 나는 또 무엇인가? 멀찍한 곳에 떨어져 앉아서 최대한 작게 몸을 웅크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상하이, 긴 여행의 첫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