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상하이 7년의 여행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상하이 7년의 여행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1-2






시간은 빨리 흘렀다. 1년 반을 예상하고 온 길이었다. 1년의 교환학생 과정을 보내야 했고, 그 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중국어 실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 학기 먼저 와서 따로 어학연수 과정을 듣기로 했다. 시간의 끝이 정해지면 남은 시간의 크기가 작아 보인다. 이 넓은 땅을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배워가기에 일 년 육 개월의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어학반의 수업은 오전과 오후 수업이 하루씩 번갈아 있어서 하루 중의 반나절은 마땅히 할 것이 없었고 학교 바깥은 끝 간 데를 모를 신천지였다. 카메라 한 대와 지도 한 장, 나침반 하나를 챙겨서 틈 날 때마다 도시를 채집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도시는 거대했다. 지도 속에는 도시를 관통하는 강과 길이 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지도 속의 점들을 잇고 있다. 그 연결은 가늘어서 아슬아슬해 보였다. 2차원의 평면 속에 면적과 위치만으로 존재하는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직접 가 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학교가 있던 곳은 새롭게 도심권이 형성되는 쉬자후이 지역이었고, 그 곳에서 화하이루를 따라 버스를 타면 온갖 백화점들이 늘어선 길을 지나 상하이의 몇 안 되는 전근대 건축물 예원의 서쪽 끝에서 버스는 멈춘다. 골동품 시장과 귀뚜라미 시장을 지나고 남방 정원의 흔적을 본 후에는 더 동쪽으로 걸어서 황포강의 야경이 유명한 와이탄에 닿거나 북쪽으로 걸어서 상하이의 가장 번화한 거리 난징루로 갈 수도 있다.



이틀 썼는데, 몇 줄 안 되네. 이렇게라도 해야 얼른 수정이라도 할 듯.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1-1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바람이 차다. 두어 번의 여행으로 한국보다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있는 날씨는 방심하기에 딱 좋을 만큼의 추위다. 한국의 추위가 정면으로 몰아쳐오는 것이었다면 이 곳의 추위는 바닥으로 낮게 깔려서 온다. 봄이 코앞인 것 같아서 한 낮의 느낌은 겨울을 이미 지나 보낸 듯한데 몸의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덤벼오는 추위는 스며들 듯이 온 몸을 감았다. 2월의 얇고 낮은 추위가 바다 건너 온 유학생을 처음 맞았다.
유학원에서 나온 가이드를 따라 짐짝처럼 실려 한 학기 동안 중국어를 배울 학교로 간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 해야 한 줌이 채 되지 않고, 가이드가 없다면 국제 미아 되기 딱이니 짐짝보다 나을 것도 없는 셈이다. 몇 장의 뜻 모를 종이에 이름을 쓰고 몇 권의 책을 정신 없이 받았다. 수속이 끝났다.

역할을 다한 가이드는 돌아갔다. 임시숙소로 배정 받은 방은 큰 길가에 있었다. 룸메이트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였다. 인사는 어색했다. 겨우 며칠 동안의 인연일 것을 서로 알았다. 짧게 인사하고, 룸메이트는 다른 수속을 위해 나가고, 해가 지고, 방은 넓었고, 방을 가득 채운 공기의 질감은 낯설었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 시작은 언제나 무서운 것이다. 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고,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도 없는 것이다. 상황이 내 뜻대로 움직여 준다는 보장도 없고,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작정한 목적지에 가 닿으리라는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인 것이다. 이제껏 지나온 많은 시작들을 생각하며 곧 익숙해 질 것이라고 다독여 보지만 그래도 공중에 뜬 마음은 좀처럼 낯선 땅에 내려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낯선 악기 소리가 산란한 마음을 깨웠다. 소리는 얇고 낮았다. 도로변에서 출발한 소리는 온통 비어서 막막한 공간 속으로 이른 봄 추위처럼 낮게 왔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인상적인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에 공간은 너무 낯설고 넓었고 긴 저녁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카메라를 들고 소리를 따라갔다.

맹인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차들을 등지고 앉아 얼후를 연주하고 계셨다. 중국의 전통 악기 얼후는 뱀가죽으로 덮은 울림통에 두 줄을 묶어 활로 켜서 소리를 낸다. 소리의 질감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이 십 수 년 만에 처음으로 긴 외국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제법 어울렸다. 할아버지의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한참을 들었다. 저 소리에라도 동화될 수 있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의 등 뒤로 자동차의 불빛들이 흐르듯이 가고, 할아버지와 나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갔다. 생경한 풍경이다. 사람들의 옷차림,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모습, 네온 사인 속에 들어 앉은 글씨들, 사람들이 지나며 내는 소리, 바람 속에 섞인 냄새. 무엇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손에 익은 카메라 하나만 겨우 익숙하다. 셔터를 만지작거리고 렌즈를 괜히 돌려본다. 할아버지 앞에 놓인 그릇에 동전 하나를 떨어트리고, 물었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 학교에 있는 유학생인데요.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보일 듯 말 듯,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단어로 대충 얽어낸 문장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내 질문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할아버지는 내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신 것인지, 그리고 내 요청에 대한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단지 단어의 부족함 때문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은 묘했다. 맹인이 사진에 대해 갖는 감상은 어떤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상을 포착해 액자에 담아 둔 장면은, 보이는 것과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할 그 앞에서 허락을 받는 나는 또 무엇인가? 멀찍한 곳에 떨어져 앉아서 최대한 작게 몸을 웅크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상하이, 긴 여행의 첫 사진이다.

글 쓰는 순서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2. 옥탑방 작업실에 사는 물고기

3. 예술가, 그 발칙한 이름

4. 강, 도시의 시작

5. 낡은 가을 오후의 산책

6. 상하이를 상하이답게 하기

7. 즈멍의 골목길

8. 여행, 길의 끝에서






시작합니다.